[토요판] 김수정의 여성을 위한 변론
(1) 불법촬영 영상 유포
(1) 불법촬영 영상 유포
일러스트 조재석
전 남친이 유포한 동영상 속 나
그놈은 얼굴 없이 목소리만 등장 매일매일 영상 찾아 삭제
지워도 좀비처럼 되살아나
무릎 꿇고 용서 빈 사람은 누나 직장·학교까지 파고든 불법촬영
“힘없는 여성이 피해자여서
제대로 대책 마련 안 하나” 일명 ‘홍대 남자모델 불법촬영 유포 사건’이 터지고, 경찰은 신속하게 대응해 범인을 체포하고 법원은 범죄에 걸맞게 징역형을 선고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칭송을 받기는커녕 여성들의 분노만 키우고 있다. 지난 5월19일 1만여명의 여자들이 서울 대학로에 빨간 옷을 입고 모였다. “홍대 사건의 경우 이례적으로 빠르고 적극적으로 수사가 이뤄졌지만, 여자가 피해자일 때는 노출 정도, 외모 등을 언급하며 2차 가해까지 서슴지 않고 신고조차 받지 않았다. 경찰의 행태에 분노한다”고 외쳤다. 이 외침은 계속 커지고 있다. 2차 시위는 4만5천명, 3차 시위는 6만명, 4차 시위는 7만명(주최 쪽 추산)이 모였다. 100년 만에 찾아왔다는 폭염도 막지 못한 외침이다. 경찰이 “성별에 의한 편파수사가 아니다. 사건의 특수성 때문에 빨리 체포한 것이다”라고 해명하는 와중에, 어떤 남자들은 “남자가 피해자면 범인을 잡지 말라는 거냐” 등의 불편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세상 돌아가는 본새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일부 있을 수도 있겠다고 넘겨버리기에는 소리가 너무 크다. 저들은 마치 남자만의 이어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만 같다. 소라넷이 폐쇄되는 데 17년이 걸리고, 피해자가 죽어도 피해자가 나오는 불법 디지털 성범죄 영상은 돌아다니며 소비되고 있는 세상이다. 여자라는 이유로 화장실에서 바지조차 내리기 꺼려지고, 내 집에서조차 옷을 여며야 하는 세상이다. 그 세상에서 나(너)의 어머니, 누이, 아내, 애인, 누나, 여동생이 살아가고 있다. 그녀들은 남의 상갓집에 와서 떠들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내 집 초상에서, 바로 나의 장례식장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이다. 영상 속 그녀 얼굴의 슬픔 헤어진 남자친구가 인터넷에 동영상을 유포한 피해자의 사건을 맡아 변론한 적이 있다. 그녀는 어느 날 직장 동료로부터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영상이 있는데 너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를 알고 지내는 지인들로부터도 연락을 받았다. 영상도 전송받았다. 영상을 보자마자 누가 영상을 유포한 것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사이버수사대에 신고하고 범인이 체포되고 구속됐지만 정작 그녀의 싸움은 이제부터였다. 그녀를 변론하기 위하여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영상을 봐야 했다. 내가 보는 것은 슬픈 스토리의 영화가 아닌데, 나는 그 영상을 보며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영상에서 얼굴이 보이는 사람은 오직 그녀뿐이다. 정성을 다하여 사랑하는 사람을 애무하는 너무나 분명한 그녀. 그놈은 목소리로만 등장한다. 그놈은 그녀와 촬영한 영상 중 자신의 얼굴이 나오지 않는 영상만 골랐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심으로 정성을 다하는 그녀의 얼굴만큼 내게 큰 슬픔으로 다가온 얼굴은 없었다. 그녀는 매일매일 자신의 영상을 뒤져서 삭제하면서 점점 절망해갔다. 매일 다른 이름의 파일로 다시 올라오는 영상, 지워도 지워도 좀비처럼 되살아나 살아 있는 그녀를 먹어치우는 영상. 그놈이 영상을 올린 이유는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그놈은 그녀와 헤어진 뒤에도 심심하면 영상을 꺼내보며 낄낄거리고, 다른 사람과 같이 보기까지 했다. 그걸로도 모자라, 자신의 여자친구와 싸우고 홧김에 그녀의 영상을 올렸다는 것이다. 한 사람을 파괴하는 일이, 한때 사랑했던 사람을 파괴하는 일이 이렇게 이루어진다. 아무 이유 없이, 술김에, 홧김에, 심심해서 등등. 매일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자신이 출연하는 영상을 찾아 지우는 일은 육체적인 힘듦은 물론 영혼을 파괴하는 일이다. 디지털 장의사를 찾아 맡기려고 해도 막대한 비용을 감당할 수가 없다. 그냥 자포자기로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디지털 속 그녀는 매일매일 무슨무슨 부인으로 바뀌어 있다. 그녀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빈 사람은 그놈의 누나였다. 그놈은 누나가 건사하던 자였는데, 누나는 같은 여자로서 용서를 빌기조차 미안하다면서도 자기 동생 한번만 살려달라면서 울며불며 매달렸다. 성범죄 사건을 맡을 때마다, 가해자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비는 사람은 그의 어머니이거나 누이였다. 막상 일이 터지면 그 뒷수습을 하는 것은 그 남자의 혈육인 여자들이거나(부친이 나서거나, 형이 나서는 경우는 또 별로 보지 못했다) 또는 애인이거나 아내들이다. 불법촬영을 하다 발각된 초등 교사의 경우 그 어머니가, 딸과 동반한 단체여행에서 성폭행을 저지른 아버지를 위해서는 그의 딸이 무릎을 꿇었다. 안희정 사건에서도 부인이 안희정 쪽 증인으로 나오지 않았던가. 여자의 도움 없이 살지도 못하면서, 남자만의 이어도에서 살 수도 없으면서, 그들은 끊임없이 여자를 몰래 지켜보고, 돌려보고, 소비한다. 그녀는 영상 삭제 비용 등의 현실적인 이유와 그녀만큼 젊은 그놈 누나의 호소에 얼마간의 합의금을 받고 합의했다. 변호사인 나로서도 실리를 선택하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실형을 받는다고 해도 6개월~1년 처벌에 불과할 것이고, 민사소송으로 손해배상금을 인정받는다 해도 가진 재산 한푼 없는 그놈에게서 받아낼 길은 멀기만 했기에 합의금으로 들고 온 돈을 받는 선택을 하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언제까지 디지털 세상에서 무슨무슨 부인으로 살아야 할지 기약할 수 없는 그녀에게, 이제는 더 이상 누구도 사랑할 수 없게 된 그녀에게, 영혼이 파괴된 그녀에게 차마 받으라고 하기엔 미약한 그 합의금을 받으라고 조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왜 세상은 더 나빠지는가 어린 시절 내가 꿈꾸었던 미래는 지금보다는 조금 행복한 세상이었던 것 같다. 최소한 내가 겪었던 일들이 일어나지는 않는 세상일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다. 어린 시절 내 치마 속을 몰래 비춰보던 놈은 육박전으로 해결했다(나는 드센 여자아이로 소문났다). 우리 집 재래식 화장실 벽돌 틈(벽돌의 빈틈은 어찌 그리 큰 것인지)으로 끈질기게 화장실을 들여다보던 옆집 중학생의 두 눈으로부터는 도시로 유학을 떠나고서야 벗어날 수 있었다. 옆집 오빠가 자꾸 들여다본다고 이야기해도 믿어주지 않던 엄마를 오랫동안 원망했다. 도시로 떠난 이후 시골집에 자주 가지 않으려 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엄마는 내가 대학생이 된 뒤에야 내가 떠난 다음 엄마도 옆집 중학생에게 당했다고 털어놨고, 내게 사과했다. 천만다행(?)으로 그 시절에는 아이들이 쉽게 카메라 같은 것을 가질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고, 인터넷도 없었다. 20여년 전 대학생 때는 후배와 지하철 공중화장실에 갔다가 봉변을 당한 적이 있다. 화장실의 구조가 서양식 변기가 아니었고, 옆 칸과 사이에 상당한 틈이 있었다. 바지를 내리고 일을 보려던 순간 뭔가 섬뜩한 눈빛이 느껴졌다. 얼른 옷을 추스르고 겁도 없이 허리를 숙여 옆 칸과 내 칸의 틈 사이를 들여다봤는데, 그 틈으로 나를 보고 있던 두 눈과 마주쳤다. 조용히 화장실을 나와 다른 여성들에게 수신호로 상황을 알리고, 후배에게는 지하철 경비를 데려오게 했다. 지하철 경비가 문을 부수다시피 해 그 남자를 끌어냈다. 나와 후배는 숨어서 지켜보다가 혹여라도 그 남자가 나와 후배의 얼굴을 볼까 두려워 냅다 도망쳤다. 그 일이 있은 뒤 지금까지도 나는 지하철 화장실에 잘 가지 못한다. 가더라도 칸 사이에 틈이 있는 화장실이나, 좌식 변기가 없는 화장실에는 가지 못한다. 20여년 전 화장실 틈 사이로 봤던 그 두 눈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꿈꾸던 미래는 새로운 것이 가득한 세상이었는데, 막상 맞이한 것은 아주 오래된 것들이 더욱 썩고 부패해 냄새가 진동하는 미래였다. 나를 지켜보던 두 눈은 눈부신 기술의 발달로 기계로 대체됐을 뿐이고, 입으로 사진으로 전달되던 것들이 인터넷 회선을 타고 순식간에 퍼져나가는 것으로, 영원히 지울 수도 없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늦었지만, 정부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지난 4월부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디지털 성범죄 대응팀을 신설하고 신속 대응을 위한 긴급심의 제도를 도입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내에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를 신설해 삭제 지원을 비롯해 수사, 소송, 사후 모니터링 등의 지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비해 대책 마련은 너무 느리고, 지원도 많이 부족하다. 처벌은 솜방망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긴급심의 제도를 도입했다고 하나, 긴급심의조차 3~5일이 소요된다. 이미 빛의 속도로 영상들이 널리 전파되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국외에 서버가 있다는 것이 절차 지연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국외에 서버가 있다는 이유로 17년간 방치됐던 소라넷이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문제 삼은 뒤 단 6개월 만에 폐쇄된 것을 보면 꼭 합당한 이유도 아니다. 어려움이 있다면 해외 공조를 공고히 하는 등 신속한 처리를 위한 방법을 모색해야 할 일이다. 불법촬영은 이제 일상으로 더욱 광범위하게 파고들고 있다. 지하철, 백화점 등에서의 불법촬영은 이미 오래됐고, 직장, 집 안, 학교 등 안전한 곳이 하나도 없을 지경이다. 여성들 입장에서는 “힘없고 권력 없는 여성이 피해자이기 때문에 제대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고 소리 지를 만하고, 어느 정도 사실이다. 일상이 무너지면, 삶이 무너지고, 삶이 무너지면, 사람이 무너지고, 사람이 무너지면, 국가도 아무 소용이 없다. 이 글을 마칠 즈음 새로 올라온 판결 하나를 본다. 피해 보상이나 사과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불법 디지털 영상 유포 사건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되었다. 집행유예 선고 이유는 다음과 같다. “A씨의 범행으로 제공된 영상자료는 타인에게 유포될 위험성이 있고 유포 시 피해자는 돌이키기 어려운 인격적 피해를 볼 수 있다. A씨의 범행을 알게 된 피해 여성은 성적 수치심과 모멸감은 물론 커다란 정신적 충격과 고통을 받았을 것으로 보이지만 A씨는 피해를 변상하거나 용서받지 못했다. 다만 A씨가 B씨로부터 헤어지자는 말을 듣게 되자 술을 마신 상태에서 충동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점, 형사처벌 전력이 없다는 점, 젊어서 자신의 성행을 개선할 가능성이 기대되는 점 등을 고려했다.”(부산지법 형사3단독 이영욱 부장판사) 한마디만 하자. 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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