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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대권 욕심이 아니라 ‘박원순 정치’의 표류가 문제

등록 2018-09-02 09:27수정 2018-09-02 16:06

[토요판] 이슈
박원순 서울시장 개발 발언 논란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7월22일부터 8월18일까지 서울 강북구 삼양동의 한 옥탑방에 거주하면서 지역문제 해법을 모색했다. 사진은 박 시장이 옥탑방에 입주하는 날 부인 강난희씨(박 시장 왼쪽)와 함께 지역주민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모습.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7월22일부터 8월18일까지 서울 강북구 삼양동의 한 옥탑방에 거주하면서 지역문제 해법을 모색했다. 사진은 박 시장이 옥탑방에 입주하는 날 부인 강난희씨(박 시장 왼쪽)와 함께 지역주민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모습.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박원순 서울시장의 ‘여의도·용산 개발’ ‘경전철 조기착공’ 등 개발 관련 발언이 서울시 부동산 가격의 급등세와 맞물리면서 박 시장 책임론 등 논란이 커지고 있다. 박 시장의 잇따른 발언이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서울시 시민참여예산지원협의회, 버스정책시민위원회 등에서 위원으로 활동하며 서울시 행정을 감시해온 김상철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이 박 시장의 행보를 비판적으로 분석한 글을 싣는다.

지난 7월10일 리콴유 세계도시상을 수상하기 위해 싱가포르를 방문했던 박원순 서울시장의 ‘여의도·용산 개발’ 발언으로 시작한 나비효과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한국감정원의 ‘주간 아파트값 동향’은 지난 27일 기준으로 역대 최대 상승률을 보였다는 보도가 나왔고, 시민단체인 경실련은 싱가포르 발언 이후로 아파트, 단독주택, 상업용지까지 고려하면 상승액이 100조원에 달할 것이란 견해를 내놓았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을 시작으로 정부 차원의 속도 조절 방안이 나왔으나 한 번 오르기 시작한 서울 집값은 떨어질 줄 몰랐다. 한 달 동안 강북의 열악한 생활환경을 직접 겪어 보겠다고 시작한 삼양동 옥탑방살이가 “비강남권 경전철 4개 노선을 조기 착공하겠다”는 발언으로 마무리되자, 불붙은 집값에 기름을 붙는 격이 되었다.

‘여의도·용산 개발’ ‘경전철 조기착공’
박 시장 발언 뒤 서울 집값 급등세
일각서 ‘대권 행보 아니냐’ 해석
문제는 대권의지 표현 방식의 진부함

‘개발을 하고 안하고’ 보다
‘어떻게 할 것인가’가 더 중요
민주적 절차, 협치 등 원칙 안보여
‘박원순 정치’ 시작한 원점 고민을

경제지와 보수언론들은 ‘서울시장과 중앙정부의 갈등’을 다룬 기사를 쏟아내면서 양비론으로 흘러갔다. 목표는 정부 부동산 규제의 김빼기였다. 부동산 시장의 입장에서는 구태여 서울시장 편을 들 이유가 없다. 박원순 서울시장이든 문재인 정부든 어느 쪽이든 부동산 시장으로부터 불신을 받도록 만들면 집값은 계속 오르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박원순 시장은 지난 26일 ’여의도·용산 개발’을 보류하겠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서울시 고위 관계자라는 이름으로 “부동산 값은 서울시장의 역할 밖이다“ 등 엇나간 이야기가 나오는 모양새다. 박 시장이 아무리 중앙정부와 맥을 함께 한다며 ‘보류’ 선언을 해도 시장에서 먹히지 않는 것은 서울시 내부의 엇박자가 불신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문재인 정부 집권 초기 발표한 8·2주택정책이 조성한 “부동산 정책의 기조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시장의 두려움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제는 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정책이 더 오랜 시간동안 지속되어야 부동산 시장의 안정이 가능하다. 박 시장의 싱가포르 발언에서 삼양동 발언까지의 40일이 문재인 정부의 400일 부동산 정책을 뒤집었다.

행정절차 무시한 발언들

왜 박 시장은 이런 논란을 자초했을까. 2022년 대선을 바라본 시도라는 해석은 단순하다. 박 시장의 최근 행보를 ‘대권 욕심’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구름이 있어 비가 내린다는 것처럼 어떤 것도 새롭게 설명해주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대권 의지를 표현하는 방식의 진부함과 그 배경이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유적을 훼손하면서도 서둘러 청계천을 복개하고 당초 선정안을 뒤집으면서 서울광장을 만들었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민간특혜 의혹에도 에스에이치(SH)공사까지 출자시킨 ‘세빛둥둥섬’ 사업이나 수백억짜리 디자인거리를 양산했었다. 박 시장은 이 두 사람같은 방식의 가시적인 성과로 평가받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실제로 그 약속의 힘으로 최초의 3선 시장이 되었다. 이는 단순히 운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 적어도 시대 변화에 따른 새로운 시대정신을 앞서서 가져갔기 때문에 가능한 성취다. 기존 도시정비 사업의 대안으로서 도시재생 사업을 도입한 것, 두터운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 마을을 정책의 단위로 설정한 것, 그동안 낯설었던 ‘혁신’이나 ‘협치’와 같은 말을 행정 내부의 말로 자리 잡도록 한 것은 쉽게 된 것이 아니다.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와 유사한 도시의 비전으로서 여의도와 용산을 언급한 것은 수많은 그의 말 중 일부였다. 오히려 의문을 가질 부분은 싱가포르 발언이 나온 7월10일에서 김현미 장관이 “정부와 협의해야 할 사안”이라고 제동을 건 7월23일까지의 침묵이다. 이것은 박원순 시장이 강조했던,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한 시정 방향에 반한다. 박원순 시장의 성급한 발표 이후 의도가 다르게 확산되었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해명하면서 절차를 밟아가야 했다. 그러지 못한 것은 박원순 시장이 가지고 있던 철학의 붕괴이고 이것은 대권이라는 욕망보다 더 위험하다. 왜냐하면 스스로 내걸었던 시대정신의 부정이기 때문이다.

박원순 시장은 스스로 “독립기구로서의 기능을 보장하겠다”고 했던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의 기능을 침해했다. 도시계획위원회는 ‘도시계획법’에 따라 서울시에 설치된 위원회로 주요한 도시계획을 심의하고 자문하는 권한을 가진다. 2012년 파이시티 논란이 벌어졌을 때 박 시장은 “당시의 도시계획위원회가 정치적 외압에 의해 왜곡되었다”고 평가하면서 “해당 위원회의 개방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서울시가 밝혀온 것처럼 여의도나 용산의 도시계획은 상당 기간 보류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국제업무지구 개발이 무산된 이후 사실상 난개발이 진행된 용산이나, 개별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쏟아지는 여의도 아파트의 재건축 계획들 대신 종합적인 마스터 플랜을 통해서 관리하겠다는 것은 타당한 방식이다.

문제는 이를 위한 계획이 수립되고 있었고 내부 검토를 끝내고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여의도·용산 개발’ 발언이 나왔다는 것이다. 도시계획위원회의 행정절차를 통하면 어차피 사회적 논란이 만들어진다. 더구나 용산이나 여의도 개발이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미친다. 그때 도시계획이라는 행정절차를 조율하는 서울시장의 정치적 행위가 작동할 수 있다. 하지만 서울시장의 결정이 도시계획위원회의 행정절차에 앞서는 순간 이런 정치적 행위의 기회는 없어진다. 도시계획위원회의 결정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문제와 동시에 서울시장으로서 행사할 수 있는 더 큰 정치적 기회를 놓친 건 어처구니없는 패착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7월 ‘여의도 통개발’ 발언을 한 뒤 여의도의 부동산 가격이 크게 상승했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모습.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7월 ‘여의도 통개발’ 발언을 한 뒤 여의도의 부동산 가격이 크게 상승했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모습.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옥탑방 생활을 마치고 나오면서 내놓은 경전철 조기 착공 방안도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당시 박원순 시장이 밝힌 강북 발전방안에는 공공기관 이전이나 경전철 조기 착공 외에 주목할 만한 정책들이 있었다. 생활권 경제의 활성화라는 관점, 적극적인 주민자산화의 방법, 소규모 정비 사업을 실질화할 수 있는 대책, 분권특별회계의 조성 등은 충분히 의미있는 대책이다. 그런데 이를 경전철 조기 착공과 동시에 발표함으로서 전혀 다른 효과를 냈다.

애초 민간투자사업을 전제로 반영된 경전철 사업은 2008년에 수립되고 2013년에 보완된 서울시 ‘도시철도기본계획’ 상의 계획노선이다. 이를 재정사업으로 바꾸려면 현재 수립 중인 도시철도기본계획의 내용을 수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김현미 장관이 지적한 대로 중앙정부와 협의해야 하는 법정 계획이다. 경전철을 재정사업으로 한다면 연말로 예정된 도시철도기본계획의 공개 시점에 맞춰도 됐다. 그리고 법적 절차에 따라 수립된 계획에서 민자사업은 사업타당성이 낮으니 추가적인 재정 부담에도 불구하고 사업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이 나오면 박 시장은 사회적 논란을 고려해 적절한 정치적 절차를 만들면 된다. 그런데 이 역시 행정절차보다 박 시장의 정치적 결단이 앞섰다. 그래서 법정계획인 도시철도기본계획이 어떤 방식으로 나오든 시장의 영향력에 따라 작성되었다는 논란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새로운 서울시는 어디로

박원순 시장은 서울시장의 권한인 여의도 개발이나 경전철 착공에 대해 중앙정부가 속도 조절에 나서자 “답답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정작 답답한 사람들은 그나마 박원순 시장을 통해서 새로운 서울시를 기대했던 시민들이다. 여의도 개발이나 경전철 사업은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는가’라는 것이고, 박원순 시장은 여기서 실패했다.

“어차피 해야 할 사업”이라고 말하는 것은 관료의 문법이다. 관료들이야 연한이 되었으니 재건축을 하는 것이나, 이미 계획에 잡혔으니 경전철을 하는 것에 크게 거부감이 없다. 어차피 한국의 도시개발 법제는 ‘하도록’ 하는 제도이지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다루는 제도가 아니다.

그래서 박원순 시장의 정치적 판단이 중요하다. 같은 관료 조직 하에서 이명박과 오세훈 전 시장과는 다른 박원순 시장의 성취가 가능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박원순 시장의 정치적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다.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지난 50일 간의 논란은 박원순 시장의 대권 욕심에 따른 정치의 과잉이 아니라 오히려 박원순 시장의 고유한 정치가 사라진 것으로 봐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합의를 통해서 결정하겠다는 민주적 절차, 잘 들리는 목소리가 아니라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더욱 키워 듣겠다는 ‘청책’, 그리고 가급적 시장의 권한을 나눠서라도 민간과 행정이 협력하도록 만들겠다는 협치와 새로운 거버넌스의 실험이 멈춰 섰다. 박 시장은 스스로 정했던 서울시 내의 위치를 상실했다. 스스로 가졌던 원칙보다 행정절차의 수월성으로 기울었고, 책임의 대상을 시민에서 관료로 옮겼다. 3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비공식적으로 피력했다는 시민사회에 대한 불만은 스스로를 이너서클로 인식한 결과다.

이런 난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박 시장이 세 번째 서울시정을 두 번째 서울시정의 연속선에서가 아니라 보궐선거로 등장한 2011년 이전의 시민운동가로서의 자신과 연결하는 것이다. 애초 박 시장이 당선된 것은 노회한 정치적 감각이나 닳고 닳은 행정 능력 때문이 아니었다. 박 시장의 가장 큰 장점은 원론에 충실한 아마추어리즘이었고 그것을 고수하는 지지력이었다. 박 시장이 아무리 노력해도 그보다 먼저 정치권에 발을 들였던 이들보다 더 정치에 숙달할 수는 없다. 이 점을 인정하고 아마추어 정치인이지만 그럼에도 유일한 3선의 서울시장이 된 스스로의 유산을 고민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지난 6월부터 지금까지 서울시가 내놓은 메시지들을 재검토 해야 한다. 그것이 계속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면 그것은 듣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문제다. 용산이나 여의도 통합개발은 해야 하는 일일 수 있다. 경전철 계획 역시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서울이라는 도시의 발전에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지금 서울시에는 다른 방식이 가능하다는 여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문제는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할 것인가’다. 자초한 문제를 계속 ’답답하다’는 식으로 하소연한다고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다. 당장 가을 이사철이 오고 있다. 높아질 대로 높아진 집값 앞에서 한숨을 짓고 있는 사람들에게 할 말과 행동을 준비해야 한다. 박원순 시장의 3선은 이미 ‘포스트 박원순 시대’의 현재다.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박원순 정치’의 원점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김상철/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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