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 출입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딸을 고등학교 영어교사로 임용해줄 테니 2억원을 달라.”
고등학교 교사로 30여년 일해온 ㄱ씨는 2015년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한 교육재단 전직 이사장인 ㅅ씨가 딸을 재단 산하 여고 교직원으로 채용해주겠다며 돈을 요구한 것이다. 이에 ㄱ씨는 ㅅ씨에게 세 차례에 걸쳐 모두 2억원을 건넸다. ㅅ씨는 그해 말 해당 여고의 행정실장 겸 법인실장을 맡고 있는 자신의 딸에게 ㄱ씨 딸을 비롯한 10명의 명단을 건네며 신규교사 임용시험에 합격시키라고 했다. 면접관들은 이들 10명에게 높은 점수를 줬고, 10명 모두 합격했다.
그러나 검찰 수사로 부정 채용은 1년을 넘기지 못했다. ㄱ씨는 이듬해 자녀의 취직을 바라는 마음에서 돈을 건넸다는 이유 등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지만, 교사직은 유지할 수 없었다. ㄱ씨는 해임 처분을 받았다. ㄱ씨 딸도 교사 임용이 취소됐고, 2억원도 돌려받지 못했다. ㄱ씨는 “해임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냈다.
하지만 법원은 해임이 타당하다고 봤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재판장 박형순)는 “ㄱ씨는 교사로서 학생들의 인격과 도덕성 함양을 위해 힘쓰고 학생들의 모범이 되도록 노력해야 함에도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 채 적극적으로 사립학교 임용비리에 개입해 그 비위의 정도가 매우 중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사립학교 임용비리는 정당하게 임용돼야 할 사람이 임용되지 못해 정의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임용비리가 만연해지면 결과적으로 학생들이 피해를 보게 되고, 사립학교 교사 전체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심화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밝혔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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