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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신혼집 녹두서점 뒷방에서 화염병 만들고…운명이었죠”

등록 2018-09-03 22:10수정 2019-05-15 20:39

[짬] 광주 오월어머니집 정현애 이사장

정현애 오월어머니집 이사장이 지난달 24일 전남대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5·18기념공간’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정현애 오월어머니집 이사장이 지난달 24일 전남대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5·18기념공간’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야말로 운명적이었어요.” 최근 전남대에서 ‘5·18 기념공간의 변화와 활용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일반대학원 문화재학협동과정)를 받은 정현애(66) 오월어머니집 이사장은 3일 “숙제 하나를 마친 느낌”이라고 말했다.

교사였던 그가 ‘80년 오월’의 한복판에 뛰어들게 된 것은 ‘녹두서점’이 시작이었다. 1977년말 이화여대에서 학생운동을 하다가 광주로 피신해 온 친구의 권유로 그는 계림동에 있던 녹두서점을 처음 찾았다. 책방 주인은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으로 전남대에서 제적된 김상윤(69) 윤상원열사기념사업회 이사장이었다. 민주화운동을 위한 독서모임 활동을 하던 김 이사장은 사회과학 금서를 보급하기 위해 77년 헌책방 녹두서점을 열었다. 정 이사장은 78년말 그 녹두서점 주인과 결혼했다.

‘5·18기념공간 변화와 활용 연구’
최근 전남대 대학원 박사학위 받아
“기념공간 98% 호남지역에 몰려 한계”

77년 친구 소개로 찾아간 ‘녹두서점’
‘운동권 핵심’ 주인 김상윤씨와 결혼
시동생·시누이 부부 등 ‘5·18가족’

박사학위 수여식에서 함께 한 가족들. 왼쪽부터 윤상원열사기념사업회 이사장인 남편 김상윤, 딸, 정현애 이사장, 아들이다.
박사학위 수여식에서 함께 한 가족들. 왼쪽부터 윤상원열사기념사업회 이사장인 남편 김상윤, 딸, 정현애 이사장, 아들이다.
녹두서점은 1980년 1월 광주시 동구 장동 58번지로 옮겼다. 전남도청 바로 옆이었다. 녹두서점은 유신 말기 광주전남지역 사회운동의 중심지이자 80년 5·18광주민중항쟁의 거점이 됐다. 서점 안 부엌 딸린 방 한칸이 부부의 신혼집이었다. 정 이사장에게 녹두서점은 “많은 분들이 모여 심각하게 사회의 앞날을 걱정하는 모임이 열렸던 공간”이었다. 녹두서점 문지기가 된 그는 79년 양심수 등 구속자의 부인을 비롯한 지역 여성들의 모임인 송백회 총무를 맡았다. 이듬해 5월 17일 밤 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남편 김씨는 예비검속으로 보안대에 붙잡혀 갔다.

“녹두서점에 모여서 화염병을 만들었어요. 팜플렛 한 장만 뿌려도 잡혀갈 시대에 화염병이 처음 등장한 곳이죠. 무고한 시민을 학살하는 공수부대에 맞서 생명을 지키기 위한 방편이었지요.”

정 이사장은 “5월20일부터 서점 뒤 창고로 쓰던 구석진 방에 대학생들이 모여 본격적으로 항쟁에 나섰다”고 말했다. 그는 송백회 회원들과 함께 시너와 솜을 조달했다. 이어 그는 5월24일 범시민궐기대회가 끝난 뒤 ‘항쟁파’가 구성될 때 대자보 작성 등의 홍보와 모금 취사 등을 맡아 여성들의 리더 노릇을 했다. “녹두서점과 들불야학, 광대, 송백회 등이 5·18항쟁의 대중조직과 다른 결의 임무를 수행했지요.”

1980년 5월 광주시 장동 사거리 녹두서점이 있던 자리에 지금은 ‘518사적지’ 표지석만 서 있다.
1980년 5월 광주시 장동 사거리 녹두서점이 있던 자리에 지금은 ‘518사적지’ 표지석만 서 있다.
80년 5월27일 새벽 계엄군에 의해 전남도청의 시민군 거점이 ‘진압’된 뒤 그 역시 녹두서점에서 붙잡혀 경찰서로 끌려갔다. 상무대 영창에 갇혀있던 남편과 세차례 대질신문을 하기도 했던 그에게 합동수사본부는 “사형감”이라고 겁을 줬다. “결국엔 포고령 위반으로 잡혀갔던 남편을 5·18 수괴의 한 명으로 조작하면서 사형을 구형하는 시나리오를 꾸미더라고요.” 남편이 무기형을 구형받으면서 그는 풀려났다. 시동생(김상집)은 시민군으로, 시누이(김현주·양서조합)와 시누이의 남편, 여동생(정현순·회사원)까지 가족 6명이 5·18로 고초를 겪었다.

“5·18공간이 제대로 보존되지 않는 이유를 고민하다가 직접 연구를 해보고 싶었어요.”

정 이사장은 2015년 전남대 대학원에 진학한 뒤, 5·18기념공간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실증적으로 분석하는 데 몰두했다. 2011년 광주시의원을 하면서 5·18 사적지 관리 관련 조례를 발의해 통과됐지만 여전히 관리가 미흡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이번 논문을 통해 80~92년 ‘항쟁공간의 배제와 방치 시기’를 거쳐 93~2007년 국립5·18민주묘지와 5·18기념공원 등이 조성됐지만 전국화가 이뤄지지 못한 문제를 꼼꼼하게 분석했다. 현재 152곳의 5·18 기념공간 중 98%가 호남지역에 있다. 2008년 보수정권이 들어선 뒤엔 되레 5·18 역사왜곡이 심화됐다. 그는 “5·18을 전체로 조망해서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독자적인 기념공간이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오월어머니집 이사장으로 취임한 그는 “5·18을 전국으로 널리 알리기 위해 작지만 의미있는 행사를 진행할 생각”이라고 했다. 오월어머니집은 5·18 때 자녀와 남편, 가족이 희생당한 여성들이 조성한 쉼터로 출발해 지금은 오월정신을 전파하는 공간으로 진화됐다.

그는 최근 녹두서점과 가족들이 겪었던 5·18 이야기를 담은 글의 초고를 마무리했다. “2년 전 <윤상원 창작 판소리>를 준비하던 소리꾼 임진택씨가 윤상원 열사에 대해 알고 싶다고 해서 기록을 정리하게 됐어요.”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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