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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헌재는 법원 재판을 왜 신성불가침으로 만드나

등록 2018-09-08 10:40수정 2018-09-08 11:30

[토요판] 이슈
8·30 헌재 과거사 재판 결정의 한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사단법인 ‘긴급조치 사람들’이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긴급조치 등 과거사 관련 헌재의 결정을 비판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사단법인 ‘긴급조치 사람들’이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긴급조치 등 과거사 관련 헌재의 결정을 비판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 과거 독재정권 때 국가로부터 폭력을 당했던 피해자들이 양승태 대법원의 이른바 ‘과거사 판결’이 부당하다면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가 여기에 대한 결정을 지난달 30일에 내렸지만, 법원 재판에 대한 본원적인 결정은 회피했다. 이번 헌재 결정이 갖는 문제점과 해결책에 대해 법무법인 덕수의 김형태 변호사가 글을 보내왔다.

지난달 30일 헌법재판소는 과거사 관련 헌법소원들에 대해 최종 결정을 내렸다. 소원이 제기된 지 3, 4년 만으로 너무 늦었다.

이번 결정은 박정희, 전두환 등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있었던 인권유린 사건들에 관한 것이었지만, 이런 사건들은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얼마 전 박근혜 정권 때도 국가정보원이 중국 공안부 공문서까지 위조해가며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를 간첩으로 조작했고, 양승태 대법원은 과거사 사건이나 일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케이티엑스(KTX) 해직 승무원 재판을 제물 삼아 박근혜 정권과 거래를 했다.

국민들은 이번 헌재 결정을 통해 위헌적인 재판들이 바로잡히기를 바랐지만 그 기대에는 많이 모자랐다. ‘법은 상식’이라 했으니 이번 결정들을 법 제정자인 국민들의 상식에 비추어 하나하나 따져보자.

1. 법원 판결은 신성불가침이다?

헌재는 법원의 재판은 헌법심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양승태 대법원의 개별 재판들에 대해서 면죄부를 주었다.

저마다 다른 이해관계와 생각들을 조정하는 것이 민법, 형법, 행정법 등 여러 법이고, 헌법은 그 조정의 근거와 방향을 국민들이 합의해놓은 근본 규범이다. 따라서 법을 제정하는 국회도, 법을 집행하는 행정부도, 법을 해석 적용하는 법원도 헌법을 벗어날 수가 없다.

1987년 국민항쟁의 결과 헌법재판소가 만들어졌고, 그 하는 일은 바로 국회, 행정부, 법원에 대한 국민의 헌법적 감시를 대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법은 유독 법원의 재판만은 심판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있다. 이는 법원의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일부의 영향력 때문인 걸로 보인다.

그들은 법원 재판에 대해 헌법심판을 허용하면 3심이 아닌 4심제가 된다고 주장한다. 3심제는 개별 법률들을 제대로 해석 적용하는 것에 관해 세 심급에 걸쳐 따져보자는 것이다. 반면에 헌법심판은 법률의 해석 적용이라는 개별 재판행위가 헌법에 합치하는지를 따져보는 것이므로 3심제와는 전혀 차원을 달리한다. 국회 입법행위나, 행정부 법 집행행위도 모든 측면이 헌법심판의 대상이 되는 게 아니고 그 행위의 헌법 위반 여부만 대상이 되는 것처럼, 법원의 모든 재판이 헌법심판의 대상이 되는 게 아니고 개별 재판의 법률 해석 적용이 헌법 위반인지 여부만 헌재가 판단하면 되는 것이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은 마구잡이로 사람을 잡아가고 국회도 무시하는 ‘긴급조치’라는 법을 만들었고, 그로 인해 수많은 학생과 시민이 옥살이를 했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이 긴급조치라는 법률이 위헌이라고 판정했다. 따라서 위헌인 긴급조치에 따라 고생을 한 사람들을 국가가 손해배상해줄 의무가 있다. 그런데 이 당연한 결론을 양승태 대법원은 이상한 논리로 피해갔다. 우선 대통령의 행위는 손해배상 등 법적 책임 추궁의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대통령의 통치행위 운운하면서 법적 책임의 대상에서 제외시키려는 주장은 절대군주 시대의 사고로, 법원 스스로 이를 인정하지 않은 지 오래다.

그리고 대법원은 위헌인 긴급조치를 근거로 사람들을 잡아가고 수사하고 재판해서 옥살이시킨 공무원들도 당시에는 긴급조치라는 법에 따라 한 일이므로 그들에게 그 ‘잘못’에 대한 고의나 과실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긴급조치가 존재한다 해도 그 법이 잘못된 거라면, 법을 따랐다고 해서 국민에게 손해를 끼친 ‘행위’에 대한 고의와 과실이 없어지는 것이 아님은 민법 교과서에 나오는 초보 이론이다. 그리고 불법행위 성립에 ‘잘못’에 대한 고의나 과실은 요구되지 않는다.

대법원 스스로 악법이라고 선언해놓고는 그 악법에 의해 피해를 본 국민들에 대해서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양승태 대법원은 청와대와 거래를 하기 위해 이런 엉터리 재판을 했다는 것이고, 피해자들은 헌재에 이 개별 재판들이 헌법에 위반된 것이라는 심판을 구했다. 헌법재판소는 이 반헌법적인 양승태 대법원의 긴급조치 관련 판결들에 대해서 개별 재판은 헌법심판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는 과거의 입장을 반복하면서 청구를 각하했다. 헌법재판소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인한 셈이다.

여러 국가기관의 행위 중 왜 유독 법원의 재판만 국민의 헌법적 통제에서 벗어난다는 것일까. 법원 재판은 국민과 헌법 위에 신성불가침으로 존재하는가.

이진성 헌법재판소장(가운데)이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선고 시작에 앞서 머리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헌재는 긴급조치 등 과거사 관련 사건에 대한 위헌 여부를 결정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이진성 헌법재판소장(가운데)이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선고 시작에 앞서 머리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헌재는 긴급조치 등 과거사 관련 사건에 대한 위헌 여부를 결정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2. ‘소멸시효 일부위헌’ 결정도 문제

민법에 따르면 피해자가 불법행위임을 안 날로부터 3년, 불법행위가 발생한 날로부터 10년 안에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으면 그 권리는 시효가 소멸된다. 하지만 국가기관의 고문 조작으로 간첩이나 살인범이 되어 사형이나 무기징역 등을 선고받고 목숨을 잃거나 수십년 감옥살이를 한 경우 그 재판이 재심으로 취소되지 않는 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길이 없다.

법원은 이 문제를 민법의 신의성실 원칙으로 해결해왔다. 위법한 재판이 재심으로 취소되지 않는 한 피해자가 ‘객관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 사유가 있는 것’으로 보고 국가가 시효 소멸을 주장하는 것을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를 남용한 것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판결해왔다. 이에 따라 피해자들은 재심 무죄가 확정된 때로부터 3년 안에만 소송을 내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양승태 대법원은 재심 무죄가 확정된 날로부터 3년이 아니라, 형사보상 결정이 내려진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는 새로운 이론을 들고나왔다. 아무리 법원에 법률의 해석 적용 권한이 있다 해도 민법상 ‘불법행위를 안 날로부터 3년’이라는 규정을 ‘형사보상 결정일로부터 6개월’로 임의로 줄일 수는 없다. 이는 국회의 입법으로만 가능하다.

재판의 법률 적용이 헌법에 맞는지
헌재가 따지는 건 의무인데도
헌법심판 대상에서 재판은 배제
양승태 대법원의 판결 피해자는
헌재 때문에 구제 기회 박탈돼

3년이던 과거사 소송 기한을
양승태 대법원이 멋대로 변경
헌재가 일부위헌 결정했으나
법원이 재심 때 수용 안 해도 그만
보상받은 이 배상 거절한 판결도
정면으로 위헌 결정 내렸어야

헌법재판소는 양승태 대법원 판결의 부당성을 해소한다는 측면에서 ‘과거사 사건에 한하여’ 법원의 재심이나 과거사위원회의 진상규명 결정이 있기 전에는 국가의 불법성 확인이 어려우므로 ‘불법행위가 발생한 날’로부터 10년의 소멸시효가 진행되게 해서는 안 되고, 재심 무죄가 확정된 시점에서 비로소 그 불법행위를 안 것으로 보아 그로부터 3년 안에만 청구하면 된다는 취지의 ‘일부위헌’ 결정을 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헌재가 일부위헌 결정을 해도 불법행위를 안 날로부터 3년, 발생한 날로부터 10년이라는 민법 시효 조항은 일반 조항으로서 바뀌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따라서 ‘과거사 사건에 한해서’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시효가 진행된다는 민법 조항은 일부위헌이라는 이번 헌재 결정은 기존 대법원의 입장에 비추어 보면 법률의 해석 적용에 해당되고, 이는 헌법이 보장한 법원의 고유 권한이다. 그 결과 이번 결정이 법원의 재심 단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상존한다. 이는 법원과 헌재의 권한 배분에 관한 사법체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헌재가 이런 실정을 뻔히 알면서도 법원의 고유 권한인 법률의 해석 적용에 해당된다고 판단될 수 있는 ‘일부위헌’ 형식을 빌려 문제를 털어버린 것은 공을 법원으로 떠넘긴 무책임한 측면이 있다.

헌법재판소로서는 법률의 해석 적용은 법원에 맡기고, 좀 더 적극적으로 법원의 개별 재판을 대상으로 삼아, 그 법률 해석이 위헌인지 여부를 심판하는 정공법을 취하는 것이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나 사법기관 사이의 역할 분담 측면에서 더 바람직해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왼쪽)이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중앙홀에서 열린 헌재 창립 30주년 기념식에서 순 한글로 작성된 헌법책에 서명한 뒤 책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문재인 대통령과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왼쪽)이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중앙홀에서 열린 헌재 창립 30주년 기념식에서 순 한글로 작성된 헌법책에 서명한 뒤 책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3. ‘민주화운동 배상 거절은 일부위헌’도 미흡

민주화보상법은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입은 피해를 세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사망 상이자에 대한 보상금, 의료지원금, 생활지원금을 지급하면 민사소송법상 화해를 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국가의 적법행위로 입은 피해는 손실보상을 하고, 불법행위로 입은 피해는 손해배상을 한다. 민주화보상법도 제1조 목적에서 보상금 지급이 ‘생활안정과 복지향상’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나아가 민주화보상법상 생활지원금의 최고 한도는 5천만원으로 제한되고, 지원금 재원도 국가가 낸 돈이 아니고 국민성금으로 마련되었으며, 일정한 소득과 직급이 있는 사람은 지원금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실제 지급된 평균 보상금은 1700만원에 불과했는데 양승태 대법원은 겨우 일천몇백만원의 손실보상금 지급을 이유로 수억원에 달하는 위자료 손해배상 책임을 부인했다.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에서도 앞서 본 소멸시효 사건에서처럼 ‘일부위헌’ 형식을 빌려 대법원 판결의 부당성을 해소하려 했다. 헌재는 민주화보상법상 화해간주 조항은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 부분에 한해서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하지만 보상을 이유로 배상을 거절하는 것은 위자료는 물론 치료비나 일실 수익 같은 적극적, 소극적 손해 ‘전부’에 대해서 위헌이다. 법원 여러 하급심도 이 화해간주 조항은 손해배상 사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결을 했다. 앞에서 본 대로 법원은 화해간주 법조항 자체는 바뀌지 않았음을 이유로, 위자료에 한하여 위헌이라는 이번 결정을 법률해석 적용에 불과하다고 보고, 이는 법원 고유 권한이라며 재심을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헌재는 화해 조항 전부에 대해 위헌 선언을 하고, 정면으로 대법원의 개별 재판 자체를 심판 대상으로 삼아 재판의 해석 적용도 위헌임을 분명히 했어야 한다.

법무법인 덕수의 김형태 대표변호사.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법무법인 덕수의 김형태 대표변호사.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이번에 5명의 헌재재판관이 바뀌고 내년에도 2명이 바뀔 예정이다. 새로 구성되는 재판부는 반드시 법원의 재판도 헌법심판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양승태 대법원의 사례에서 보듯 법원의 위헌적 개별 재판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않으면 과거사뿐 아니라 지금과 미래의 국민 기본권 보장은 언제든 뒤로 후퇴할 위험이 있다.

법원 역시 이번 헌재 일부위헌 결정의 취지를 적극적으로 재판에 반영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국회는 입법을 통해 이번 헌재 결정의 미진한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 먼저 법원 재판을 헌법심판의 대상에서 제외한 헌법재판소법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 그리고 아예 헌재에 헌법심판을 제기하지 않았거나, 이번에 재판소원을 배제하고 일부위헌을 선언한 헌재 결정 때문에 구제의 길이 아주 막힌 긴급조치, 소멸시효, 민주화 보상 관련자들에 대해 특별법을 제정하여 제대로 배상을 하여야 할 것이다.

김형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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