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대법원 법원 전시관 안에 법관의 양심과 독립 등을 명시한 헌법 제103조가 적혀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통합진보당 소송 개입 문건이 김현석 당시 선임재판연구관을 통해 유해용 당시 수석재판연구관(현 변호사)에게 전달된 것으로 확인됐다. 김 연구관은 현재 대법원 재판연구관실을 책임지는 수석재판연구관으로 일하고 있다.
8일 <한겨레> 취재 결과, 2016년 6월8일 행정처 사법정책실이 작성한 ‘통진당 사건 전합 회부에 관한 의견(대외비)’ 문건은 김 당시 선임연구관을 통해 유 수석연구관에게 전달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문건은 2014년 헌법재판소의 당 해산결정으로 의원직을 박탈당한 통진당 국회의원들이 의원직을 되돌려달라고 낸 행정소송 상고심을 대법관 13명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할지 검토하는 내용이다. 문건에는 ‘(회부시) 국회의원 직위 상실 여부 판단 권한이 사법부에 있음을 명징하게 외부에 알릴 수 있다’, ‘(파기환송시) 대법·헌재 갈등 주제로 양비론 기사 양산 예상’ 등 전합 회부와 판결 결과가 헌재와의 ‘위상경쟁’에 미칠 장·단점이 나열돼 있다. 대법원 자체조사단도 “행정처의 관여는 전합 회부 권한을 갖는 담당 소부 소속 대법관의 재판에 관한 권한을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 바 있다.
행정처 문건은 김 선임연구관을 거쳐 유 수석연구관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선임연구관은 수석연구관에 이어 재판연구관실을 책임지는 당사자다. 재판연구관은 대법원 재판의 사건 분석, 법리 검토, 판결문 작성 등을 도맡는 자리기 때문에, 문건 내용이 대법관들에게 보고돼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문건 전달 이후 대법원장과 대법관 3명이 전합 회부 여부를 검토하는 ‘전합소위원회’가 열렸는데, 유 수석연구관이 회의 참고용 자료를 보고했다고 한다.
김 연구관은 <한겨레>에 “당시 이메일로 전달받은 문건을 바로 (총책임자인) 유 수석연구관에게 보고했다”고 했다. 다만 “문건은 전합 회부를 부정적으로 검토했지만, 실제 해당 사건은 전합에 회부됐다. 문건이 (재판에) 영향을 미칠 만한 것은 아니었다고 본다”고 했다.
김 당시 선임연구관은 지난해 2월부터 재판연구관실을 책임지는 수석연구관을 맡고 있다. ‘사법농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재판연구관실 자료 확보에 난관을 겪고 있다. 앞서 검찰은 일제 강제징용 소송,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송 등 관련해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연구관실에서 증거가 인멸될 가능성이 없다”, “연구관들은 사건을 검토한 것일 뿐이다” 등 이유로 기각했고, 전교조 소송 관련 연구관 보고서 ‘최종본’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발부했다. 행정처의 연구관실 자료 임의제출도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행정처와 재판부는 분리됐다’는 법원 쪽 주장은 점점 힘을 잃는 모양새다. 앞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 선거법 위반 사건, 부산 법조비리 의혹 사건, 통진당 비례대표 지방의원 의원직 확인 소송 등에서 행정처와 대법원이 문건을 ‘맞교환’하거나, 대법관까지 나서 하급심 재판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난 바 있다.
한편 당시 김 선임연구관으로부터 통진당 소송개입 문건을 전달받은 유해용 수석연구관(현 변호사)은 지난 2월 퇴직 시 재판연구관 보고서, 판결문 초고 등 대법원 재판자료 수백 건을 빼돌린 의혹을 받는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이언학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6일 “공공기록물관리법위반죄 등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된다”며 압수수색 영장을 내주지 않았다. 이에 검찰은 대법원에 고발을 요청했지만, 대법원은 지난 7일 “검찰이 이미 수사하고 있는 사건에 관해 법원행정처나 대법원이 범죄 혐의 성립 여부를 검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고발하지 않고 ‘문건 회수 등 필요한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해당 자료들은 수사 진행 중인 범죄의 증거물이다. 임의 회수는 증거인멸죄 등 위법성이 있다”는 입장을 냈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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