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대법원 재판자료를 무단유출한 의혹을 받는 전관 변호사 압수수색 영장 심사 뒤 “죄가 안된다”는 판단을 내리면서, 재판연구관실 자료에 대한 법원의 ‘이중잣대’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앞서 대법원이 비공개 내부지침을 근거로 검찰의 재판연구관실 자료 접근을 빗장 친 논리와 모순된다는 비판이 따른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검찰에 재판연구관실 자료를 임의제출하지 않으며 ‘사건절차진행정보 및 연구관 보고서 등의 보안에 관한 유의사항’을 근거로 대 왔다. 비공개 대법원 내부지침인 이 유의사항은 “재판연구관의 검토보고서 및 의견서 등은 대외비에 준해 관리한다”며 “판결·결정의 선고·고지 이전은 물론 그 이후에도, 파일, 인쇄본 등 어떠한 형태로든, 그 전부는 물론 일부도 대법원 외부에 제공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한다. 다만 △대법원 관련 연구업무 △파기환송뒤 동종사건을 맡은 하급심 재판부 △사법연수원 교육 목적 △특수한 사법행정 목적상 필요한 경우 등에 제한해 예외적으로 제공하되, 사전에 대법관이나 수석재판연구관 허가를 거치도록 해뒀다.
어떠한 경우에도 ‘외부인’의 재판연구관 자료 접근은 안된다는 이 ‘대원칙’은, 선임·수석재판연구관 출신 전관 변호사 앞에서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서울중앙지법 박범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10일 유해용 전 수석연구관의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하며 “자료 반출·소지는 ‘대법원의 입장’에서 볼 때 매우 부적절하지만, 죄가 되지는 않는다”, “반출·소지 자료를 수사기관이 취득하는 것은 재판의 본질적 부분을 침해할 수 있다”고 했다. 전관 변호사의 무더기 기록 반출은 ‘부적절한 행위’일 뿐이고, 그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검찰 수사는 외려 ‘재판 본질 침해’라고 규정한 것이다. 판사들은 “차관급인 고법 부장이 영리 목적으로 재판 기록을 반출한 것에 사실상 ‘면죄부’를 준 것 아니냐”고 입모았다.
재판연구관실 자료는 각종 ‘재판거래’ 의혹의 진상을 규명할 핵심 연결고리로 꼽힌다. 법원행정처의 재판개입 시도가 실제 대법관들에게 전달됐는지 규명하기 위해서는, 대법원 재판의 법리 검토, 판결문 초안 작성 등 실무를 담당하는 연구관실에 대한 접근이 필수적이라는 게 검찰 주장이다. 유 변호사가 연구관실 업무를 총괄하며 ‘긁어모아’ 반출한 연구관 보고서 중에는 일제 강제징용 민사소송, 통합진보당 행정소송,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행정소송 집행정지 등 재판거래 의혹을 규명할 핵심 자료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로서는 자료 확보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법원 스스로 검찰의 재판연구관실 자료 확보가 가질 ‘폭발력’을 내다보고 있기 때문에, 유 변호사 압수수색 영장에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것 아니냐”고 짚었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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