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농단 사건에 대한 잇따른 부실 대처로 취임 1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김 대법원장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뜻에서 ‘부작위 리더십’이라는 평가마저 나온다.
고위 법관을 지낸 한 변호사는 12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국민의 사법부 불신이 극에 달하고 있는데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김 대법원장의 부작위 리더십이 답답하고 실망스럽다”고 했다. 한 고법 부장도 “검찰 수사에 대해서는 판사들 사이에 견해가 갈리지만, 김 대법원장이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데는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라며 “김 대법원장을 지지한다는 얘기는 법원 내부에서 듣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김 대법원장의 위기는 특유의 침묵에서 비롯됐다. 유독 사법농단 사건의 압수수색영장 기각률만 90%를 웃돌면서 여론이 악화일로에 있음에도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 ‘재판 기밀’이 담긴 공문서를 대량 반출했다가 검찰 수사를 받게 되자 파기한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사태에도 여전히 입을 닫고 있다. “사법행정 차원에서 검찰 수사에 필요한 협조를 마다하지 않겠다”는 공언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 법관 출신 변호사는 “지금 나타나는 사법부에 대한 비판과 불신은 양승태 대법원 시절 사법농단에만 원인이 있는 게 아니라, ‘지금 대법원도 하는 걸 보니 결국 한통속이 아니냐’는 분노가 섞여 있다”고 진단했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개혁에 대한 의지도 의심받고 있다. 지난 8월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이 작성해 국회의원들에게 설명했다는 ‘법원개혁 입법과제’ 자료를 보면 한마디로 ‘셀프개혁안’이다. 국민의 여론과 지혜를 모으는 공론화 과정도 생략돼 있다. 사법개혁은 대법원과 행정처가 주도할 테니 입법은 국회가 맡아달라는 식이다. 상고법원 추진의 이유가 됐던 대법원의 ‘10초 재판’ 문제는 아예 언급조차 없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이날 성명을 내어 “사법부의 ‘셀프개혁’ 시도를 규탄한다”며 “사법부는 진심으로 국민 모두에게 사법개혁의 진정한 길을 묻는 개방적 입장으로 선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법원은 13일 사법부 창설 70돌 기념 ‘법원의 날’ 행사를 연다. 이 자리에서 김 대법원장이 그간의 침묵을 깨고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 주목된다.
강희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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