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 기장 이아무개씨는 3㎝ 가량의 턱수염을 깎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 달 가까이 비행 업무에서 배제됐고, 감급 1개월의 징계까지 받았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비행기 기장이 턱수염을 기르는 것을 금지하는 회사 취업규칙은 무효이며, 이를 이유로 기장의 비행업무를 정지하고 월급을 깎는 등의 징계를 한 것은 위법이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개인행동의 자유에 대한 침해라는 이유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턱수염을 기른 비행기 기장 이아무개씨에게 비행업무 정지를 명령하고 감급 1개월의 징계처분을 했다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한 처분’이라는 판정을 받은 아시아나항공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판정을 취소하라’며 낸 행정소송의 상고심에서 아시아나항공 쪽 상고를 기각해 원고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4일 밝혔다.
재판부는 수염을 기르는 것을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는 아시아나항공의 취업규칙은 ‘경영에 관한 의사결정의 자유 등 기업의 영업의 자유’를 넘어, 헌법상 행복추구권과 ‘근로자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어서 민법과 근로기준법에 따라 무효라고 판단했다. 아시아나항공 취업규칙인 ‘임직원 근무복장 및 용모규정’은 남자 직원에 대해 “안면은 항시 면도가 된 청결한 상태를 유지하며, 수염을 길러서는 아니 된다” 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기업이 합리적 범위 안에서 취업규칙을 통해 소속 직원들의 용모와 복장 등을 제한할 수 있지만, 이런 취업규칙은 근로자의 기본권을 침해하거나 헌법 등 상위 법령에 위반될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 “수염을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는 취업규칙은 기본권 간의 상호조화와 이익형량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사회 인식의 변화 등을 고려할 때 수염을 기른다고 반드시 고객에게 부정적인 인식과 영향을 끼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수염 자체로 영업의 자유에 미치는 위해나 제약이 있다고 볼 수도 없다. 항공운항의 안전을 위해 항공기 기장의 턱수염을 전면적으로 금지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합리적 이유와 근거도 찾기 어렵다. 다른 항공사들도 운항승무원이 수염을 기르는 것을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기장인 이씨가 자신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지키기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퇴사 외에는 없다. 그럼에도 수염을 일률적·전면적으로 기르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볼 수 없어, 일반적 행동자유권의 과도한 제한이 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런 이유를 들어 수염을 기르지 못하도록 한 취업규칙은 무효이며, 취업규칙 위반을 앞세워 이씨에게 비행정지와 감급 1개월의 징계를 내린 아시아나항공의 조처는 위법이라고 판단한 원심 판결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아시아나항공은 A320 비행기 기장으로 근무하던 이씨가 턱수염을 깎으라는 지시에 불응하자 2014년 9월12일부터 이씨가 면도를 하고 수염을 기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 9월말까지 이씨의 비행업무를 정지했다. 회사는 또 2015년 7월 취업규칙을 어기고 면도 지시에 불응했다는 이유로 이씨에게 감급 1개월의 징계 처분을 했다.
이씨는 이들 처분에 대해 각각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내어,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한 처분이라는 구제명령을 받았다. 아시아나항공은 이에 불복해 각각 행정소송을 냈다.
비행업무 정지 조처에 대한 재판에서는 1심 재판부가 “항공사는 일반 기업보다 직원들의 복장이나 용모를 훨씬 폭넓게 제한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며 원고승소로 판결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아시아나항공의 용모규정은 내국인 직원들에 대해서만 수염을 금지함으로써 직원을 ‘국적’을 기준으로 차별하고 있어 평등원칙에 위배하므로 무효”라며 이를 깨고 원고패소로 판결했다. 감급 1개월 처분에 대한 재판에서는 1·2심 모두 원고패소로 판결했다.
대법원은 두 사건 모두 원심인 항소심의 원고패소 판단이 옳다고 인정했다.
여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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