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낮 서울 동대문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근처에 있는 평양면옥 내부모습. 임재우 기자
“동생아! 오늘은 내 고향 북녘 하늘도 더없이 맑겠구나.” “오라버니! 바람과 구름에 실어 안부 전해드려요.”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가을 하늘을 닮은 파란 바탕의 대형 걸개그림이 서울 동대문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디디피) 앞 거리를 수놓았다.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의 프레스센터가 설치된 디디피의 길 건너편 두산타워와 밀리오레 등 대형 쇼핑몰 건물에는 세일 정보 대신 실향민들의 염원이 자리 잡았다.
그중 한명은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태어난 정금옥(81)씨다. 1947년 10살 소녀 시절 부모와 함께 월남한 정씨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정상회담 내내 너무 긴장돼서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씨는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큰오빠, 작은오빠와 이별을 했다. 정씨는 “오빠가 살아있는 건지, 조카는 만날 수 있는지, 하루 종일 심장이 떨려 죽겠다”며 “잃어버린 가족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염원했다.
남북 정상이 만나는 장면이 전파를 탄 뒤 얼마 지나지 않은 점심시간, 디디피 근처에 있는 중구 평양면옥은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으로 빼곡했다. 손님 오명숙(52)씨는 “오늘은 정상회담 날이어서 그런지 더 맛이 좋은 것 같다”며 “정상회담이 잘 끝나서 평양에서 평양냉면을 먹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직원들과 함께 ‘평냉’을 먹었다는 이계방 한국석유유통협회 부회장은 “오늘이 정상회담일이어서 ‘평양냉면 먹기 좋은 날’이라는 이야기를 나눈 참”이라며 “사업하는 입장에서 ‘평화는 경제다’라는 말이 와닿는다”고 말했다.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 프레스센터가 마련된 서울 동대문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건너편에 있는 밀리오레 쇼핑몰 앞에 걸린 대형 걸개그림. 10살때 부모님 손을 붙들고 서울로 왔다는 실향민 정금옥씨가 북녘에 남은 오빠에게 안부를 전하는 모습이다. 중구청 제공
점심식사 뒤 커피숍을 찾은 직장인들의 화제 역시 ‘정상회담’이었다. 직장인 조주현(30)씨는 “이번 회담에서는 외교적인 사안들이 구체화돼서 실현됐으면 좋겠다”고 염원했다. 직장인 김명철(31)씨도 “통일이 돼서 북한을 통해 러시아, 유럽까지 여행을 가고 싶다”며 웃었다.
디디피 인근 상점들도 모처럼 활기를 띠는 모습이었다. 디디피에서 수공예품 판매를 준비하던 박혜정씨는 “정상회담이 꼭 성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평화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똑같지 않겠냐”고 말했다. 쇼핑을 왔다는 직장인 김소영(28)씨는 “오전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손을 맞잡고 인사를 나누는 걸 보니 이제는 서로에게 익숙해진 것 같더라. 남북 정상의 만남이 ‘익숙’을 넘어 ‘일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권지담 임재우 기자
gonji@hani.co.kr
[화보] 2018 평양 남북정상회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