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18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열린 제5차 성차별 성폭력 끝장집회에 참가한 이들이 피켓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언제 살 뺄래? 뚱뚱하면 남자친구 안 생겨’라는 친척들에게 이번 추석에는 ‘그러지 말라’고 말할 거에요.” 우가영(21)씨는 이번 추석에 3년 만에 친척들을 만나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우리 가족이 다들 체격이 큰 편이에요. 그런데 친척들은 오빠에게는 아무 말도 안 하면서 저에게는 명절 때마다 ‘뚱뚱하다’고 했어요.” 가족들의 외모 지적에 스트레스를 받았던 우씨는 대학생이 된 지난 2016년부터는 명절 때마다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며 차례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동안 참았지만 이제는 말하려고요. ‘외모 품평 좀 그만하라’고.”
연초부터 시작된 ‘#미투 운동’으로 이번 추석에는 ‘집안의 성차별’에도 침묵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겠다고 다짐하는 젊은 여성들이 늘고 있다. 가부장제의 ‘끝판왕’ 명절 문화에 그동안 참아왔지만 더는 참지 않고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것이다. 사회에서, 학교에서 타오른 #미투의 열기가 이제는 집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고등학생 송지현(18)씨는 명절이면 매번 등장하는 ‘가사 분담’과 관련해서 목소리를 내겠다고 다짐했다. “그동안 우리 집에서 차례상 차리는 일은 여자 어른들의 몫이었어요. 일손이 부족하면 저와 친척 언니가 도왔지 남자 형제들은 일을 안 했어요. ‘왜 여자만 일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지만 이에 대해 제대로 말해본 적은 없었어요.” 송씨는 “가족이 함께 먹을 음식이고 함께 살아가는 집이니까 집안 일은 가족들이 나눠서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며 “다른 가족들이 지금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면 이번 명절을 계기로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취업준비생 이다연(25)씨는 할아버지 산소에 갈 때마다 늘 궁금했던 점을 물어볼 계획이라고 했다. “할아버지 묘비 뒤쪽에 보면 남자 가족들 이름만 적혀 있고 여자 가족들은 모두 빠져있어요. 어릴 땐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크면서 ‘여자들은 가족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이씨는 “이번 추석에 할아버지 산소에 가면 큰아버지한테 왜 여자 가족들 이름은 빠졌는지 물어보고 고쳐달라고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런 현상에 대해 한국여성민우회 김진선 활동가는 “최근에 사회 전반적으로 성차별에 대한 의식이 성장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김 활동가는 “불법촬영 규탄 시위에 수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판매량이 곧 100만부를 돌파하는 현상 등을 보면, 이런 흐름은 단순히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에서 소수가 움직이는 모습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성차별이 계속되어 온 이유는 그동안 한쪽이 일방적으로 참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간 기득권을 누려왔던 쪽이 변화할 차례”라고 덧붙였다.
최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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