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김수현 공공형사수사부 부장검사가 삼성그룹의 노조와해 공작 수사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삼성그룹 차원에서 노조와해 공작을 직접 수립하고 실행한 혐의로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등 전·현직 고위 임원들이 무더기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전사적 역량이 동원된 군사작전식 조직범죄”로 규정했다. 하지만 ‘무노조 경영’을 강조해온 이건희 회장 등 총수 일가의 개입은 밝혀내지 못했다. 검찰은 삼성 에버랜드 노조와해 공작과 관련해 추가 수사를 벌여 총수 일가의 지시 여부 등을 확인할 방침이다.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부장 김수현)는 27일 ‘삼성전자 및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창업 초기부터 내려온 ‘무노조 경영’ 방침을 관철하기 위해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 인사지원팀이 주도해 노조와해 공작을 총괄 기획·실행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미전실 등이 노조와해 전략 문건을 매년 작성해 계열사별 대응태세를 점검하고, 이를 노무 담당 인사평가에 반영했다”고 덧붙였다.
검찰이 확보한 삼성 미전실 작성 노사전략 문건(2013년)에는 노조 설립을 ‘악성 바이러스 침투’로 규정하고, 노조를 고사시키기 위해 ‘그린화’(노조 탈퇴) 전략을 마련하는 한편 이를 각 계열사에 전파해 실행하도록 했다. 또 삼성전자에는 종합상황실 및 신속대응팀을 만들어 군대처럼 일사불란하고 체계적으로 노조와해 공작이 진행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고용노동부 장관 정책보좌관 출신 노조전문가에게 월 2000만원의 급여와 성공보수 6000만원을 주기로 약정한 뒤 모두 13억여원을 주고 노조 ‘소진전략’을 실행했다. 또 노조원의 임신, 결혼·이혼 여부, 재산상태 등 민감한 개인정보를 몰래 수집해 ‘에인절(angel) 요원’을 통한 노조 탈퇴 회유에 활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노조파괴 전문업체인 ‘창조컨설팅’보다 더 교묘하고 은밀한 형태로 노조와해가 진행됐다”고 평가했다.
삼성 총수의 지시를 각 계열사에 전파하는 컨트롤타워인 미전실이 노조와해 전략 ‘마스터플랜’을 작성한 사실이 드러났지만, 검찰은 “총수 일가의 개입이나 공모 증거는 확보된 게 없다. 추후 에버랜드 등 삼성 계열사 수사 때 살펴봐야 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이날 삼성의 노조와해 공작 수사와 관련해 “누구나 알고 있었으나 누구도 확인하지 못했던 진실의 전모를 밝혀냈다”고 자평했다. 또 “‘노무관리’ 명목으로 노조 설립 단계부터 성숙기에 이르기까지 맞춤형 노조와해 방법이 백화점식으로 총망라됐다”며 이를 “노동자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조직범죄”로 규정했다.
앞서 검찰은 2013년 10월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삼성의 노조와해 공작을 담은 ‘에스(S)그룹 노사전략’ 문건을 공개했을 때, 이건희 회장 등을 무혐의 처분한 바 있다. 이번 재수사는 지난 2월 삼성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소송비 대납 의혹을 수사하던 중 노조와해 문건을 확보하면서 ‘우연히’ 시작됐다.
검찰은 이날 이상훈 의장과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 삼성전자서비스 박상범 전 대표이사 및 최우수 현 대표이사 등 삼성 관계자 28명을 노동조합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노사협상에서 삼성 쪽을 지원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관계자 3명도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노사협상권을 위임받은 경총이 “삼성의 이익을 위해서만 협상을 진행해 삼성의 무노조 경영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됐다”고 표현했다.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서비스에는 불법파견 혐의(파견법 위반)도 적용됐다. 검찰은 지난 6~8월 최평석 삼성전자서비스 전무, 목장균 전 삼성전자 전무 등 4명도 같은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현소은 김양진 기자
so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