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역의 한 아파트 단지의 모습. 기사 내용과는 상관없습니다. <한겨레> 자료사진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을 한 단지에 섞은 이른바 ‘소셜믹스’ 아파트 단지인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가 송사에 휘말렸다. 아파트 내 의사결정에서 임차인들의 목소리가 소외됐다는 문제제기로 시작한 분쟁이 ‘불법녹음’·‘잡수입 쌈짓돈 의혹’ 등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을 둘러싼 각종 의혹으로 번지면서 소송전까지 벌어진 것이다.
분쟁의 중심에는 이 아파트에서 7년간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었던 마포구 비례대표 구의원 ㄱ씨가 있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시공해 2010년 입주를 시작한 이 아파트는 분양주택 142세대, 임대주택 719세대가 한 단지 내에 공존하는 ‘소셜믹스’(혼합주택) 단지다. 하지만 아파트 내 의사결정 과정에서 ㄱ씨가 전체 세대의 83%를 차지하는 임차인들의 목소리가 묵살해 왔다는 불만이 쌓이면서, 임차인들은 지난해 3월부터 공동대표회의와 별개로 임차인대표회의를 만들기 위해 간담회를 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불법녹음’ 의혹이 불거졌다. 전직 관리사무소직원 등이 ㄱ씨가 임차인들의 간담회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회의실에 ‘녹음장치’를 설치해 불법녹취를 했다고 폭로한 것이다. ㄱ씨는 이에 대해 “내가 시켰다는 것은 사실무근”이라 주장하고 있다.
아파트 내 부대시설 이용료나 재활용품 매각 등으로 발생한 수입인 ‘잡수입’은 분쟁에 불을 질렀다. 최근 7년간의 잡지출 내역을 받아본 임대세대 주민들은 크게 분노했다. ㄱ씨의 시아버지상 부의금, 관리실 직원들과 야유회비, 에스에이치 마포센터 직원들과의 회식비 등으로 잡수입 수백만원이 사용된 내역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ㄱ씨는 “업무상 이유로 공동대표회의 의결을 거쳐 사용된 것”이라 해명했지만 논란을 잠재우지 못했다. 결국 지난해까지 공동대표회의로 진행되던 주민의사결정체는 입주자대표회의와 임대자대표회의로 쪼개졌고, ㄱ씨는 임차인 대표를, 임차인 대표는 ㄱ씨를 맞고소하는 사태로 이어지게 된다.
도입 15년이 됐지만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이 ‘섞이지 못하는’ 소셜믹스의 고질병이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셜믹스’는 소득이나 계층이 서로 다른 사회집단의 주거지를 계획적으로 혼합 배치해 사회통합을 도모한다는 목적으로 2003년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공공임대주택 거주민에 대한 사회적 차별 문제를 분양과 임대를 ‘섞어’ 완화한다는 취지다. 올해 6월 30일 기준으로, 에스에이치의 ‘혼합단지’는 263개 단지 17만4455세대(분양 11만6573세대·임대 5만7882세대)에 이른다.
문제는 혼합단지가 좀처럼 ‘혼합’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에스에이치 도시연구원이 2017년에 발표한 ‘분양·임대 혼합단지 입주민 통합을 위한 관리제도 개선방안 연구’를 보면, 2011년부터 2016년 5월까지 에스에이치에 제기된 혼합단지 관련 전자민원은 138건에 이른다. 민원 사례는 용역업체 등의 선정(32.6%), 부대·복리시설 등의 관리(25.4%), 분양·임대 대표회의(13.8%) 등 아파트 전반적인 결정사항을 아울렀다. 연구를 진행한 오정석 에스에이치도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ㄱ아파트처럼 임차인들이 세대의 다수를 이루는 혼합단지가 등장했음에도 지금까지 법체계들은 분양세대를 우선시하고 있어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짚었다.
‘혼합단지’ 내 주요의사 결정은 입주자대표회의와 에스에이치와 같은 임대사업자가 결정하도록 돼 있다. 별도로 임차인대표회의를 구성한다 하더라도 임차인대표회의는 의사결정 주체가 아닌 임대사업자의 협의대상일 뿐이다. 그나마 입주자대표회의와 임대사업자가 협의해야 할 대상도 한정적이다. 공동주택법 시행령 제7조는 장기수선충당금이나 주택관리업자의 선정 등을 입주자대표회의와 임대사업자가 공동결정하도록 하고 있지만, 잡수익이나 부대시설 등에 대해서는 따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입주자 대표회의가 임의로 잡수입 사용이나 부대시설 관련 사항에 대해 결정해도 임차인들이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결국 ‘소유권’ 중심이 아닌 ‘생활권’ 중심의 법령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 연구원은 “분양세대의 ‘소유권’은 존중하더라도 잡수입이나 부대시설 등 ‘생활권’ 관련 결정 등에서 임차인들이 소외되어서는 안된다”며 “‘소셜믹스’의 취지가 분양세대와 임대세대의 벽을 허무는 것인 만큼 분양세대 위주로 구성된 법체계의 벽을 허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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