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납기일 지킨 부분 위약금 돌려줘라”
국방부가 납품업체와 불평등한 계약을 맺은 뒤 업체한테서 계약 보증금을 몰수한 것에 대해 “부당하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2단독 신인수 판사는 해군전자장비 납품업체 ㅎ무역이 “납품계약 일부를 못 지켰다고 계약 보증금 ‘전액’을 몰수당했는데 이는 부당하다”며 서울보증보험을 상대로 낸 채무 부존재 확인소송에서 “피고는 계약 보증금 가운데 3100여만원을 돌려주라”고 판결했다고 9일 밝혔다.
어뢰 교란장비 부품을 거래하는 ㅎ무역은 2003년 전파증폭기 등 49만9천달러(5억1천여만원)어치의 납품계약을 국방부와 맺었다. 계약서를 보면 ‘매도인의 몰수되는 계약이행 보증금액은 배상금액의 청구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고 규정돼 있다. 곧, ㅎ무역은 거래액의 10%(5100여만원)를 계약이행 보증금으로 내야 하며, 계약을 중도해지할 땐 국방부가 보증금을 모두 몰수하고 이외에 손해배상도 청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ㅎ무역은 ‘계약파기 땐 서울보증보험이 피보험자인 국방부에 계약 보증금을 지급한다’는 조건으로 보증보험 계약을 맺었다. ㅎ무역은 19만달러어치의 장비를 만기일에 납품하지 못했고, 국방부는 보증금 전액을 서울보증보험에서 받아갔다. 서울보증보험은 ㅎ무역에 “국방부에 지급한 5100만원을 내놓으라”고 통지했고, ㅎ무역은 일단 돈을 낸 뒤 소송을 걸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사건 위약금 약정은 계약을 어길 때 손해배상 책임을 지는 것과 별도로 업체에 제재를 가하고 계약이행을 강제하는 이른바 ‘위약벌’로 봐야 한다”며 “이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된 것으로 약관규제법에 어긋나 무효”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국방부의 잘못으로 계약이 해지될 경우에는 따로 ‘위약벌’ 규정이 없는 것도 불공평하다”며 “서울보증보험은 납품을 마친 부분에 해당하는 3100여만원은 돌려주라”고 덧붙였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