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현장에서 한 소방관이 지친 모습으로 앉아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지난해 4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진행된 ‘소방관 고(GO) 챌린지’를 혹시 기억하시나요? (
▶관련 기사 : 가수 이승환씨가 하얀 분말 뒤집어쓴 까닭은? ) 소방관의 국가직 전환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며 소화기 분말에 쓰이는 베이킹소다(탄산수소나트륨) 가루를 온몸에 뒤집어쓰는 캠페인이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표창원, 박주민 의원과 가수 이승환씨, 배우 정우성씨, 유지태씨 등이 참여해 화제가 됐죠.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이 여론의 지지를 얻은 건 생명을 걸고 일하는 소방관들이 열악한 처우에 처해 있기 때문입니다. 2014년 5월, 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소방관들이 현장에서 쓰는 장갑을 자비로 구입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소방관의 처우 개선을 위한 목소리가 빗발쳤습니다. 그해 6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선 불볕더위 속에 방화복을 착용한 현직 소방관들이 릴레이 1인시위를 벌이기도 했지요.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은 문재인 대통령이 내건 대선 공약이기도 합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전남 여수세계박람회장에서 열린 ‘제2회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소방직 공무원의 국가직 전환은 국가가 져야 할 당연한 의무이자 최고로 소중한 가치”라고 말했습니다. 불과 9일 뒤인 11월3일, 천안 중앙소방학교에서 열린 제55회 소방의날 기념사에서도 “소방관들의 숙원인 국가직 전환을 시도지사들과 협의하고 있다. 지역마다 다른 소방관들의 처우와 인력·장비 격차를 해소하고 전국 각 지역의 소방 안전 서비스를 골고루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거듭 국가직 전환을 강조했습니다.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 ‘소방관 GO(고) 챌린지 - 이승환편' 화면 갈무리
행정안전부 역시 지난해 10월 “2019년 1월부터 지방직인 소방공무원을 국가직으로 일괄 전환해 국민 안전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올해 중으로 법안을 마련해 국회를 통과하면, 내년 1월부터 전원 국가직 전환이 가능하다는 계산이었죠.
1년이 지났습니다. 감감무소식입니다. 행안부는 아직 법 개정안을 마련하지 못했고, 이재정·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용주 민주평화당 의원이 발의한 관련 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도 지지부진합니다. 법안 논의부터 공포, 실제 시행까지 걸리는 시간을 고려하면, 당장 법안이 제출된다고 해도 애초 계획대로 2019년 1월 일괄 전환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소방관 국가직 전환 논의는 왜 제자리일까요. 주요 쟁점을 짚어봤습니다.
■ “지역간 격차 해소해야”vs“지방분권 강화 추세에 역행”
행안부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의 핵심은 국가직·지방직으로 나뉘어 있는 소방공무원을 국가직으로 일원화하되 인사권·지휘권은 현행대로 각 지방자치단체에 남기는 것입니다. 국가직 공무원은 소방청과 중앙소방학교, 중앙119구조본부에, 지방직 공무원은 각 시·도 산하에서 근무합니다. 수는 지방직 공무원이 압도적입니다. 올해 7월 기준, 총 5만170명의 소방공무원 가운데 국가직은 631명(1.3%), 지방직은 4만9539명(98.7%)입니다.
“지방직 소방공무원 4만4792명 전체를 국가직으로 전환하고 시도지사 관할 시도 소방본부 소속으로 한다. 다만, 지역 단위 재난에 대한 시도지사의 총괄·조정 역할을 고려해 소방에 대한 시도지사의 인사권(위임)과 지휘·통솔권한은 현행대로 유지한다. 예산은 시도에서 편성·집행하는 체계로 하되 새로운 재정 소요는 재정분권과 연계해 적극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법률에 근거한 소방특별회계를 신설, 국가·지방의 전입금 구성비율을 법정화 한다.”
-행안부 2017년 10월 브리핑
그런데 사실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을 모두가 찬성하는 건 아닙니다. 국가직 전환을 주장하는 쪽은 △대형화, 복합화 양상을 보이는 재난·안전문제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점 △소방서비스의 지역간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점 △소방 인력 충원에 용이하다는 점 등을 꼽습니다. 소방청은 “현장 출동인력 부족 비율이 서울 6%, 인천 27%, 경기 39%, 충북 51%, 전남 50%, 경북 50% 등으로 시·도별 차이가 큰 실정”이라며 국가직으로 전환할 경우 이같은 격차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27일 37명의 사망자를 낸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화재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반면 △지방분권·지방자치 강화 추세에 역행한다는 점 △신속한 재난 현장대응을 위해선 시·도지사가 재난안전을 통합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점 △대형재난에 대한 종합적인 대응이 곤란하며 지자체의 책임 회피 등이 우려된다는 점 등을 내세우며 반대하거나 유보하는 입장도 있습니다. 또 지휘권과 인사권을 지역에 그대로 둔다면 “중앙·지방 소방 간의 지휘체계를 일원화해 신속한 대응 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는 국가직 전환의 애초 취지가 무색해진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 ‘국가직’이지만 예산은 지자체가 담당하라?
무엇보다 가장 큰 쟁점은 바로 소방관들의 인건비를 국가와 지자체, 둘 중 어느 곳에서 어떤 방식으로 지급하느냐입니다. 현재 국가직의 보수는 국비에서, 지방직은 각 지자체 예산으로부터 지급받습니다. 김민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소방청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올해 지역 소방예산 예산 4조8219억원 가운데 지방비로 충당하는 재원이 92.6%(4조4629억원)에 달합니다. 국비 비율은 7.4%(3590억원)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소방안전 분야 국비부담률이 평균 67%를 상회하는 것과 견줬을 때 극히 미미한 수준입니다. 이 때문에 재정여건이 좋지 않은 지역은 소방업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인력이나 장비 확충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소방공무원을 전원 국가직으로 전환할 경우, 이들의 보수는 모두 국비로 지급하는 걸까요? 일단 현재까지 논의 상황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 8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소위원회에서 관련 법 개정안을 처음 논의했는데요. 관계부처인 행안부와 기획재정부, 소방청의 주장은 각각 다릅니다.
먼저 소방청은 기존의 소방공무원과 신규채용 예정인 2만명에 대한 인건비까지 모두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행안부는 기존 공무원 인건비는 현행대로 각 지자체가, 신규 채용 인원은 국가가 부담하는 방안을 내놨습니다. 기재부는 신규 채용 인원에 대한 인건비까지 모두 지자체에서 부담하되, 국가가 각 지자체에 추가로 예산을 지급하는 방안을 내놨죠. 현재 8대 2 정도인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7대 3으로 조정, 지방세 비중을 높이는 이른바 ‘재정분권’과 연계해 추진한다는 겁니다.
각 부처는 아직까지도 통일된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재부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국가직화 할 경우 재정지원에 대한 공감대는 어느 정도 있지만 어떤 방식으로 (지원을) 할지는 정확하게 정해진 게 하나도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행안부 관계자는 “국가가 지원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건 정부의 공통적인 인식이다. 지금 그 부분을 조율하는 과정에 있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소방청도 올해 말 제출하는 것을 목표로 별도의 법안 발의를 준비 중입니다.
2016년 11월30일 새벽 큰불이 난 대구 서문시장에서 소방관들이 화재 진압을 하고 있다. 사진 대구시 제공
■ “당장 급한 것 아냐”, “조건부 찬성” 미온적인 지자체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을 위해 넘어야 하는 또 다른 산은 바로 각 지자체입니다. 지난해 10월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실이 17개 시·도지사를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전북과 충북 단 2곳만 국가직 전환에 찬성 의견을 밝혔습니다. 여당 소속 지자체장을 두고 있던 서울·강원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입장 표명을 보류했고, 경기·충남·인천·부산 등은 반대했습니다.
행안부는 “지난해 10월 기본적인 방향을 발표할 때 큰 방향은 지자체가 어느 정도 동의를 했다”고 밝혔지만 일부 지자체는 여전히 “세부적인 조건을 보고 다시 판단할 것”이라며 미온적인 입장을 보입니다.
경기도청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소방공무원들의 근무환경 개선에 가장 초점을 맞춰야 하지만 국가직 전환은 당장 정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부산시는 “아직 명확한 판단을 하기는 어렵다. 세부적인 내용이 나오면 다시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조건부 찬성을 내걸기도 합니다. 충남도청은 “국가직 전환이 지방분권 시대에 역행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미 대통령이 공약하고 결정한 사항인 만큼 국회를 거쳐 국가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찬성이다. 다만 (행안부가) 밝힌 것처럼 인사권과 지휘통솔권을 지자체가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이 전제조건”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대구시 역시 인사권과 지휘권을 지자체장 쪽으로 강화돼야 한다는 조건 하에 찬성한다는 입장입니다.
■ “소방관 개개인에겐 큰 의미 없을 듯” 현장 민심은
현장에서 근무하는 소방공무원들의 의견도 대체로 지역에 따라 엇갈립니다. “‘빛 좋은 개살구’ 같은 느낌”이란 비판이 있는가 하면 “일단 전환한 뒤 단계적으로 보완하는 것이 낫다”는 입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공통적으로 국가직 전환이 ‘만능’ 정책이 될 수 없음을 강조했습니다. 정부가 내놓는 장밋빛 전망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셈입니다.
지방직 구급대원 ㄱ씨
“저희 사무실은 대체적으로 좀 (국가직 전환을) 기다리는 편이거든요. ‘일단은 한 번 해봐야 하지 않겠냐’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좀 많은 편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예산, 인력, 장비같은 게 지역마다 차이가 나니까요. 국가직 전환이 되면 아무래도 그런 차이가 개선되지 않을까요.”
지방직 구급대원 ㄴ씨
“지자체마다 기대하는 게 달라요. 서울이나 광역시권의 소방공무원은 기대를 안 하는 직원이 많은 편입니다. 국비 예산으로 모두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명칭만 국가직이지 똑같이 시·도지사의 지시를 받아야 하니까요. 시어머니가 두 명인 건 그대로인 상태인 거죠. 국가직 전환이 오히려 간부 승진 자리만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인식도 있습니다. 사실 예산도 지자체에서 집행하고 명칭만 국가직이라고 하면 (지금과) 똑같이 인력이 필요한 만큼 뽑긴 어렵지 않을까요. 현장 직원들 사이에선 기대감이 줄어든 게 사실입니다.”
경남지역 구급대원 ㄷ씨
“국가직으로 바뀐다고 해도 (지휘, 인사권 등) 지방직과 같은 체계는 유지될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많이 기대되는 건 아닙니다. 현장에선 장비 부족보다 인력 충원이 더 시급하거든요. 소방 분야가 경찰 등과 견줬을 때 힘이 참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경찰처럼 소방도 중앙의 소방청이 (예산·인사·지휘권 등) 권한을 갖고 단일한 지휘체계를 만드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경기도 119구조대원 ㄹ씨
“현장 최일선에서 근무하는 입장에선 국가직 전환이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중앙에서 관리를 하면 일선 현장 대원들을 위한 장비 보급이나 복지 문제를 균형적으로 할 수 있다는 생각들이 있어요. 또 구급대원 폭행문제가 많이 대두되는데, 시도에서 관할을 하면 각기 다르게 대응을 해요. 만약 중앙으로 넘어가서 뭔가 제도화되면 소방공무원들의 근무환경을 개선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어요. 국가직 되면 소방의 목소리를 더 힘있게 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국가직 구조대원 ㅁ씨
“기대하는 분들은 70∼80%, 원하지 않는 분들이 20∼30% 가량입니다. 아무래도 국가직 전환이 되면 예산이 열악한 지역도 함께 장비 교체 등을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인사권을 지역에 그대로 두면 (국가직 전환의)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지역에서 5년 가량 있다가 중앙으로 올라온 경우인데요, 물론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인사권 남용을 하는 사례가 있었어요. 인사나 승진이 공정하지 못하게 돌아간다고 느끼는 경우가 좀 있었죠. 국가직으로 전환된다고 하면 중앙에서 이런 인사권도 일원화가 돼야 하는데 현행과 그대로라면 저희 개개인에게는 (국가직 전환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결국 국가직 전환 그 자체가 목적이 되선 안 될 겁니다. 대신 국가직 전환이 처우 개선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서 제대로 기능하도록 보완하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재난 현장에서 구조 인력이 부족하거나 장비가 낡아 희생되는 소방관이 더 이상 없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가 같을 테니까요.
박다해 이준희 김민제 기자
doal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