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왼쪽 사진)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5일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박근혜 정부의 보수단체 불법지원(화이트리스트) 관련 선고 공판에 각각 출석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박근혜 정부 때 친정부 성향 보수단체를 지원한 이른바 ‘화이트리스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이 선고됐다. 같은 혐의로 재판을 받은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재구속을 피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8부(재판장 최병철)는 5일 “피고인들은 누구보다 헌법 가치를 엄중하게 여겨야 함에도, 피해자(전국경제인연합회)에게 자금 지원을 강요해 사적 자치의 원칙을 깨뜨렸다”며 이같이 선고했다. 김 전 실장은 2014년 전경련을 압박해 21개 친정부 성향 보수단체에 23억여원을 지원하게 한 혐의(직권남용, 강요)를, 조 전 수석은 35억여원(2015년, 31개 단체)을 지원하도록 한 혐의를 받았다.
재판부는 이 가운데 ‘화이트리스트’ 관련 강요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다만 직권남용 혐의는 “특정 시민단체 지원 요구는 비서실장 등의 직권이 아니다”라고 봤다. ‘지위를 이용한 불법 행위’를 저질렀지만, 민간단체 상대로는 직권 자체가 인정되지 않아 처벌이 어렵다는 취지다. 박근혜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계 지원을 배제한 ‘블랙리스트’ 재판의 경우, 문화체육관광부 등 공무원 상대 범죄라 ‘직권’이 인정된 것과 차이가 있다.
이날 판결로 김 전 실장은 석방 두달 만에 다시 구치소에 수감됐다. 앞서 김 전 실장은 ‘블랙리스트’ 혐의로 구속기소돼 항소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지만, 대법원 재판 중에 구속 기간이 끝나 지난 8월6일 석방됐다. 조 전 수석도 블랙리스트 재판 때 ‘구속기소→1심 석방(집행유예)→2심 법정구속→구속만기 석방’ 등을 거치며 ‘롤러코스터’를 탄 바 있다.
이날 재판에서 ‘화이트리스트’ 공범인 박준우 전 정무수석, 신동철·정관주 전 비서관, 오도성 전 국민소통비서관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허현준 전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행정관은 강요죄 외에 재판에서 위증한 혐의 등이 추가돼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재판부는 또 현기환 전 정무수석에 대해서는 ‘화이트리스트’ 외에도 2016년 4·13 총선 때 국가정보원 돈으로 친박계 인사 당선을 위한 불법 여론조사를 한 혐의 등까지 인정해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다만 여론조사 명목으로 국정원장한테 특별사업비 5억원을 받은 혐의(뇌물, 국고손실)로 기소된 김재원 자유한국당 의원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여론조사비’의 목적이 분명해 개인에 대한 뇌물이라고 볼 수 없고, 이미 현 전 수석 시절 특별사업비 조성이 끝나 국고손실죄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한편, 재판부는 조·현 전 수석이 국정원 특수활동비 각각 4500만원과 5천만원을 활동비 명목으로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뇌물)는 무죄로 판단했다. 검찰은 이병기 전 국정원장 등이 정보수집 활동 등에 대한 도움을 기대하고 돈을 제공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여권 핵심인사인 이 전 원장이 (뇌물을 줄) 동기가 불분명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는 지난 6월 형사32부(재판장 성창호)가 “청와대, 정치권 동향 파악 과정에서 정무수석실 도움을 기대하며 돈을 줬다”며 이 전 원장에게 유죄를 선고한 것과 정반대 판단이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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