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대체복부 없는 병역법 헌법불일치 불합치 결정을 내린 6월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과 인권단체 회원들이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한 병역거부 사건에서 ‘대체복무 없는 처벌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를 반영한 법원의 무죄 판단이 잇따르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아직 결론을 내놓지 않은 상황에서 하급심이 ‘선제적 판단’을 하고 있는 셈이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형사5단독 송주희 판사는 지난달 헌재 결정 취지를 인용하며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입대하지 않아 기소된 박아무개(21)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송 판사는 “헌재 결정에 따르면 종교적 신념에 따라 입대는 거부하나 민간대체복무가 시행될 경우 기꺼이 응하겠다고 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하여 대체복무의 기회를 부여하지 않고 병역법 제88조 제1항을 적용하여 처벌하는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위헌적인 상황을 배제하고 법률을 합헌적으로 해소하려면 개선입법 전에 기소되고 재판받는 피고인에게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이 정한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송 판사는 결론 내렸다.
수원지법 형사11단독 김도요 판사도 지난 8월과 9월 병역거부자 5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김 판사는 “대체복무제가 도입되지 않아 입영할 수 없다고 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형벌을 가한다면 헌재 결정처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게 된다”고 판단했다. 김 판사는 “헌재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형사처벌로 인한 불이익이 심대하고 대체복무를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달성할 공익이 크지 않다고 보아, 대체복무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제5조 제1항이 과잉금지원칙에 위배하여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했다”며 “양심적 병역거부자로서 대체복무제가 도입되지 않아 입영할 수 없다고 하는 경우까지 형벌을 가한다면 헌재 결정과 같은 이유로 양심의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수원지법 안산지원 형사6단독 김승주 판사는 지난 8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지방병무청장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현역병 입영처분을 할 수 없고 그러한 처분을 할 경우 위법한데도, 이 결정 이전에 이루어진 처분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한다면 피고인의 헌법상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는 결과가 된다"고 지적했다.
지난 6월 말 나온 헌재의 위헌 결정 뒤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한 병역거부자의 1·2심 무죄 선고는 14일 현재 21건에 이른다. 법원은 헌재 결정전까지만 해도 대법원 판례에 따라 징역 1년6개월의 유죄를 예외 없이 선고해 왔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8월30일 공개변론을 열어 종교를 이유로 현역병 입영이나 예비군 훈련 소집을 거부한 것이 병역거부의 정당한 사유가 되는지를 심리했지만 아직 결론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편 대한변호사협회는 오는 16일 변호사 등록심사위원회를 열어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백종건 변호사의 재등록 여부를 심사한다. 양심적 병역거부로 1년6개월 실형 선고를 받고 지난해 5월 출소한 백 변호사는 변호사 재등록을 청구했지만 대한변협은 변호사법을 근거로 거부했다. 변호사법은 금고 이상의 형이 집행된 뒤 5년이 지나지 않으면 변호사 결격 사유로 규정한다. 헌재 결정이 나온 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양심의 자유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고려해 백 변호사의 재등록 신청에 재차 ‘등록 적격’ 의견을 밝힌 바 있다.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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