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에서 벌금 130억원, 추징금 82억여원이 선고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산은 집 한 채”라고 했다. 그의 서울 논현동 집 공시지가는 62억원이다. 형법은 형이 확정되고 30일 이내에 벌금을 완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기간 안에 벌금을 내지 않으면 징역형과는 별도로 최장 3년까지 교도소에서 일을 해 ‘일당’으로 벌금을 갚는 노역장에 유치된다. 이 전 대통령 1심 재판부는 벌금을 내지 않을 경우를 고려해 ‘노역장 3년 유치’를 함께 선고해두었다. 130억원을 3년으로 나누면 그의 일당은 1187만원이 된다. ‘황제노역’인 셈이다. 벌금을 내지 못하는 빈곤층 등을 위한다는 입법 취지가 왜곡되는 것이어서 일당 상한 등을 제한해야 한다는 법 개정 여론이 높다.
14일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이 법령정비 주무기관인 법제처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법무부는 ‘노역장 유치 기간을 최장 3년보다 더 늘리는 식으로 형법을 개정해 고액벌금 대상자의 처벌 형평성’을 확보하라는 법제처 권고를 사실상 거부했다. 법무부는 “기간을 늘리면 노역장 유치가 벌금 집행 확보를 위한 간접 수단이 아닌 추가 징역형으로 기능할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며 부정적 검토의견을 냈다. 2016년 11월 국회에서도 관련 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법무부는 “사실상 추가 징역형이 될 수 있다”며 반대한 바 있다.
이처럼 정부부처가 법제처의 법령정비 권고를 거부하는 비율은 증가 추세다. 2016년 26%, 2017년 25%이던 게 올해는 31%(9월 현재) 수준이다. 특히 법무부는 29건 권고 중 절반이 넘는 15건을 거부(51.7%)했다. 이 중에는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내용도 있다. 법제처는 ‘자녀는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른다’는 민법 규정이 “부계 혈통유지를 옹호하고 가정 내 양성평등을 저해할 수 있다”며 개정을 권고했다. 이에 법무부는 “혼인신고 시 부모가 협의한 경우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를 수 있다’는 민법 내용을 근거로 “부성주의 원칙을 강제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거부했다.
법제처 권고 거부율은 법무부에 이어 기획재정부(43.3%), 국방부(42.3%), 여성가족부(41.7%), 행정안전부(32.1%) 순으로 높았다. 채이배 의원은 “정부부처 중에 이른바 힘센 기관들이 소관법령의 불합리성을 지적받고도 복지부동하고 있다. 정부 업무평가에 법제처 법령정비 권고 수용률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