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2005년 천성산 터널 반대 단식을 하던 지율 스님. 한겨레 자료 사진
지율 스님의 천성산 터널 공사 반대 단식과 공사중단 가처분 신청 등으로 6조원의 손해가 발생했다는 <조선일보> 기사는 허위여서 정정보도를 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지난 12일 지율 스님(61·본명 조경숙)이 조선일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등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정정보도를 하라’며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9일 밝혔다. 이에 따라 <조선일보>는 판결 확정일로부터 20일 이내에 신문 5면에 정정보도문을 게재해야 한다. 대법원 확정 판결은 항소심 판결이 선고된 지 4년여만이다.
지율 스님은 지난 2012년 9월18일 <조선일보>가 보도한 '도롱뇽 탓에 늦춘 천성산 터널…6조원 넘는 손해'라는 기사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조선일보를 상대로 정정보도 및 사과문 게재, 1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소송 대상이 된 조선일보 기사는 2012년 대통령선거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등으로 근무할 당시 화물연대·철도노조 파업, 전국교직원노조 문제, 천성산 터널 문제, 전북 부안 방폐장 유치 관련 갈등 등에서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고 비판하는 내용이다. 기사 본문의 상당 부분은 지율 스님이 경부고속철도 건설을 위한 대구 천성산 터널 공사에 반대하기 위해 청와대 앞에서 단식 농성을 하고 공사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는 등의 활동을 담았다. 기사는 '당시 건설교통부 평가로 1년간 공사가 중단되면 사회·경제적 손실이 2조5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고 표현했으며, 2004년 지율 스님이 청와대 앞에서 단식 농성을 하던 중 당시 시민사회수석이던 문 대통령과 만나는 사진이 첨부됐다.
지율 스님은 소송에서 “터널 공사가 중단된 것은 6개월이고 그로 인한 손실액은 51억원에 불과한데도 기사 제목에 손해가 6조원이 넘는다고 기재한 것은 허위”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쪽은 “문제 된 부분은 진실한 사실이거나 일반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요약한 것일 뿐 허위 사실은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1심 재판부는 기사의 중요 부분이 진실하거나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고 원고패소로 판결했다. 지율 스님은 이에 불복해 항소하면서 1원의 손해배상 청구는 취하하고 정정보도로 청구 취지를 바꿨다.
2심 재판부는 2014년 6월 “조선일보는 원고의 단식과 가처분신청 때문에 천성산 터널 공사가 2년8개월간 중단돼 모두 6조원의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묵시적으로 적시했지만 이런 보도 내용은 허위”라며 정정보도를 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손해액으로 예상한 2조5000억원은 공사중단으로 경부고속철도 2구간 완공이 1년간 지연될 것을 전제하고 있는데, 2구간 공사는 계획대로 2010년에 개통됐으므로 2조5000억원의 예상 손해는 더는 발생할 여지가 없게 됐다. 실제 가처분 신청으로 공사가 중단된 기간도 2년8개월이 아니라 6개월이다. 그럼에도 조선일보는 개통 이후인 2012년 9월에 기사를 보도하면서 1년간의 공사중단 때 손실 예상액이 2조5천억원이고, 대법원이 2년8개월만에 공사재개를 결정했다는 내용을 ‘도롱뇽 탓에 늦춘 천성산 터널 … 6조원 넘는 손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도 조선일보 보도 내용을 허위라고 판단한 원심에는 사실을 오인하거나 언론의 자유를 부당하게 제한하는 등의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여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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