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영상] 조선의 라이더님들, ‘산재’하십니까?

등록 2018-10-19 11:53수정 2018-10-19 14:40

<한겨레TV> 세상의 한 조각 ‘원:피스’
맥도날드 라이더 박정훈씨가 말하는 배달대행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부룽, 부룽, 부룽부룽부룽~ 부루루루루룽~ ”

어릴 적 특별한 날에만 먹던 자장면, ‘철가방 오토바이’ 소리는 언제나 우리 마음을 들뜨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 철가방을 나르던 라이더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배달 어플리케이션, 4차 산업의 첨병, 플랫폼 산업이라는 거창한 수사 뒤에는 결국, 중국집 철가방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자장면과 역사를 함께 한 ‘배달 라이더들’의 일상, 그들의 삶을 위해 나선 사람이 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도 어디든 올라가는 배달 라이더

“헉, 여긴가? 시키셨죠?”

오늘은 첫 배달부터 5층 꼭대기를 탔습니다. 맥도날드 라이더 2년 차 박정훈(34)씨는 건물만 봐도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습니다. 층수가 낮거나 빨간 벽돌 건물은 여지없이 엘리베이터가 없습니다. 계단을 타고 음식을 배달해야 합니다.

“옥탑방이나 4층에 사시는 분들이 배달시키는 심정을 저도 이해는 합니다.” 힘든 숨을 몰아쉬며 박씨가 애써 웃습니다. 배달 손님을 탓하지 않는 것, 배달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디든 올라가야 하는 삶. 배달 노동자의 숙명처럼 보였습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하는 박정훈 씨. <한겨레TV> ‘원:피스’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하는 박정훈 씨. <한겨레TV> ‘원:피스’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배달을 위해 계단을 오르는 박정훈 씨. <한겨레TV> ‘원:피스’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배달을 위해 계단을 오르는 박정훈 씨. <한겨레TV> ‘원:피스’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생애 첫 사고’ 산재 신청 뒤 요양…소문이 퍼져 ‘산재 상담 전담사’로

제법 내공이 쌓였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배달할 건물의 구조를 휜히 꿰뚫 수 있다는 정훈씨가 잊지 못하는 순간은 따로 있습니다. 첫 사고의 기억입니다. 난데 없는 사고였습니다. 멀쩡히 서 있던 배달 오토바이가 바람에 쓰러지더니, 정훈씨의 엄지 발가락을 강타했습니다. 발가락은 시퍼렇게 멍이 들었고, 깁스까지 했습니다. 전치 두 달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정훈씨는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라이더로 일하기 전에 알바노조에서 활동했던 경험이 도움이 됐습니다.

“3일 요양이 필요한 질병은 산재가 가능합니다. 제가 당한 사고가 전치 두 달이거든요. 그러면 두 달 동안 산업재해보험(이하 ‘산재’)에서 휴업급여와 치료비가 나오거든요.” 정훈씨의 일은 삽시간에 라이더들 사이에 소문이 났고, 이때부터 정훈씨는 자칭타칭 ‘산재의 달인’으로 불립니다. 눈치보며 산재 신청을 꺼리던 동료들이 정훈씨에게 상담을 청합니다. 그렇게 정훈씨가 일하는 맥도날드 매장에서 산재 신청 3건이라는 역사가 만들어졌습니다. 동료들은 정훈씨를 ‘산재 상담 전담자’라고 부릅니다.

사고나던 당시를 회상하는 박정훈 씨. <한겨레TV> ‘원:피스’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사고나던 당시를 회상하는 박정훈 씨. <한겨레TV> ‘원:피스’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사고 후 발에 깁스를 한 모습. <한겨레TV> ‘원:피스’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사고 후 발에 깁스를 한 모습. <한겨레TV> ‘원:피스’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본사와 직접 계약한 라이더만 4대 보험 가입…대부분 산재 사각지대

노동자가 산재보험에 가입했다고 해서 산재 신청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더 심각한 것은, 산재를 신청할 기회조차 없는 노동자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배달 대행업체 라이더들입니다. 배달 플랫폼이라는 거창한 이름 뒤에서 ‘개인 사업자’로 일하는 라이더들은 특수고용 노동자 신분으로 산재를 포함해 노동자로서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합니다. 우리가 편하게 어플로 누리는 배달 서비스는 산재의 권리조차 누리지 못한 노동의 결과물입니다.

박정훈 씨가 만들려고 하는 라이더 유니온 명함. <한겨레TV> ‘원:피스’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박정훈 씨가 만들려고 하는 라이더 유니온 명함. <한겨레TV> ‘원:피스’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폭염수당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박정훈 씨. <한겨레TV> ‘원:피스’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폭염수당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박정훈 씨. <한겨레TV> ‘원:피스’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정훈씨는 오지랖 넓게 매장 내 라이더들의 처우를 넘어 다른 대행업체 라이더들의 문제까지 들여다 봅니다. 본의 아니게 올해 여름 ‘배달 노동자들에게 폭염 수당을 지급하라’고 1인 시위를 벌인 것이 유명세를 타면서 일이 커져버린 탓도 있죠. 그 일을 계기로 정훈씨는 ’라이더 유니온’이라는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라이더 유니온은 직고용 라이더뿐만 아니라 노동의 사각지대에 있는 대행업체 라이더의 권익을 상담합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조사를 보면 배달 노동자의 교통사고 원인 중 가장 많은 비중(32.4%)은 업장에서 정해놓은 제한 시간내 배달을 하기 때문입니다. 라이더들은 명색이 ‘사장님’이라고 불리지만, 실제 매장 점주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고 그 때문에 사고를 당하는 게 현실이죠.

배달 라이더의 주행 중 시선. <한겨레TV> ‘원:피스’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배달 라이더의 주행 중 시선. <한겨레TV> ‘원:피스’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배달대행기사 산재보험 가입 현황. <한겨레TV> ‘원:피스’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배달대행기사 산재보험 가입 현황. <한겨레TV> ‘원:피스’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전체 배달대행 기사 중 62%가 산재 미가입

“계약서를 따로 쓴 건 없는데 신분은 개인 사업자죠.”

정훈씨가 퇴근 뒤 신촌의 알바상담소 사무실를 찾았습니다. 라이더 유니온이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곳입니다. 오늘도 대행업체 라이더의 상담이 정훈씨를 기다립니다. 2년 차 라이더 김성일씨입니다. 계약서 따위는 쿨하게 스킵하는 4차 산업 플랫폼에서 일하는 김씨는 산재보험의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끼고 있다고 했습니다. 몇 번의 사고를 목격한 뒤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오토바이가 무리해서 (가다가) 그대로 옆 차량을 받아 날아가는 것을 봤고요. 신호위반한 택시가 불법 유턴 하다가 그대로 (오토바이를) 꽂아가지고 라이더가 다치고, 오토바이는 반파되고.”

끔직한 사고보다 심각한 것은 배달 대행업체 라이더 62%가 산재에 가입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라이더 절반 이상이 매 순간 죽음을 넘나드는 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콜을 잡는 김성일 씨. <한겨레TV> ‘원:피스’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콜을 잡는 김성일 씨. <한겨레TV> ‘원:피스’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배달을 떠나는 김성일 씨. <한겨레TV> ‘원:피스’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배달을 떠나는 김성일 씨. <한겨레TV> ‘원:피스’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콜에 목숨 거는 ‘을 사장님들’…불이익 탓에 산재 꺼내지도 못해

“띠링~ 아, 이건 찍어야 돼…. 아… (놓쳤네)”

라이더들이 목숨을 거는 건 이른바 ‘콜’(주문)입니다. 인터뷰 중에도 성일씨는 콜이 들어오는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명색이 개인 사업자 ‘김 사장님’은 결국 콜의 노예였습니다. 콜의 노예인 사장님은 또 다른 사장님의 눈치를 봐야 하는 신세입니다. 성일씨는 산재보험에 가입하고 싶지만 대행업체에 산재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한다고 합니다. 업체 사장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을의 신분이니 “긁어 부스럼을 만들기 싫다”는 것입니다. 결국 성일씨는 “아, 이건 찍고 가야겠다”고 콜을 잡고 황급히 자리를 떴습니다.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한겨레TV> ‘원:피스’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한겨레TV> ‘원:피스’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배달을 나서는 박정훈 씨. <한겨레TV> ‘원:피스’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배달을 나서는 박정훈 씨. <한겨레TV> ‘원:피스’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배달 노동자들의 위험은 제도의 헛점이 만들었고, 제도의 헛점은 국가가 방기한 탓이라고 말합니다. “산업구조가 지금 변화하고 있고 노동시장의 플랫폼화와 디지털화가 많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유럽이나 다수의 선진국들은 신고제로 배달업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배달업 자격) 요건을 엄격히 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장비를 제대로 갖췄는지, 교육훈련 등 업체의 기본적인 룰(조건)을 지키는데 우리나라는 이런 조건 없이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에 기본적인 사업주로서의 책임을 방기하는 거죠.“

결국, 정부가 나서 배달산업 분야에서 고용의 질을 높여야 산재사고 등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것입니다. 플랫폼 산업이니, 4차 산업혁명이니 해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사람을 먼저 두지 않으면 결국 사람이 다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배달 라이더들, 산재합시다!

라이더 유니온 준비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훈씨는 다른 배달 라이더들에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사고가 나더라도 포기하지 마세요. (라이더가) 사장님이라고 해도, 조금만 따져보면 산재 적용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산재 제외 신청서는 절대 쓰면 안 됩니다. 그것만 안 쓰면 노동자성을 인정받아 산재받을 수 있어요.모든 배달라이더들이 ‘산재하는’ 그날은 언제쯤 올까요?

기획·연출 : 조성욱PD chopd@hani.co.kr
촬영 : 박성영
CG : 곽다인
내레이션 : 김포그니 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