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부산 괴정3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회원들이 어르신에게 나눔냉장고 안 반찬 세트 1개씩을 전달하고 있다. 지역사회보장협의체는 지방자치단체와 민간 복지기관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비영리 민관 협치기구다. 한겨레 자료 사진.
경기 남양주시의 ‘지역사회보장협의체’에서 12년 동안 사무국장으로 일했던 전아무개씨가 “다음 주까지만 근무하라”는 해고 통보를 받은 건 지난 7월23일이었다. 갑작스럽고도 일방적인 통보에 당황한 전씨는 남양주 시장과의 면담을 신청한 끝에, 8월29일 이아무개 정무비서관을 만날 수 있었다. 지역사회보장협의체는 지방자치단체와 민간 복지기관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비영리 민관 협치기구다. 지방자치단체장과 민간위원장이 함께 ‘공동위원장’을 맡기 때문에 시장에게 해고 문제를 호소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이 비서관의 답변은 전씨의 기대와 달랐다. ‘시장이 바뀌었기 때문에 선거를 도와준 사람들이 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면담 내용이 담긴 녹취록을 들어 보면, 이 비서관은 전씨에게 “새로 당선된 시장님이 자기가 갖고 있는 철학이 있고, 선거라는 게 혼자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도와주신 분들이 있다”며 “기존에 하시던 분들은 능력 유무를 떠나서 물갈이를 해야 한다. 인적청산이다”라고 말한다. 또한 이 비서관은 시장이 바뀌었음에도 자리를 지키는 전씨가 ‘비정상’이라고 몰아붙인다. 이 비서관은 “시장이 바뀌었으면 먼저 본인의 진퇴를 의논했어야 했다. 4년마다 했어야 했다”며 “제가 보기에 전씨는 비정상”이라고 발언한다. 남양주시에서는 지난 6월 지방선거를 통해 12년 만에 보수정당 후보가 아닌 더불어민주당 소속 조광한 후보가 시장으로 당선된 바 있다.
전씨는 이번 해고 조처에 대해 “우리는 특정 정당을 위해 일하는 조직이 아니다. 단지 시장이 바뀌어서 선거에 도움이 된 사람을 채용해야 한다는 이유로 12년 동안 일했던 직장인에게 해고를 통보하는 게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이아무개 비서관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갑작스럽게 이뤄진 면담이라 녹음된다는 생각을 못 하고 허심탄회하게 말하다 보니 수위가 높아진 면이 있다”며 “시장이 공동위원장으로 있는 지역사회보장협의체의 담당 과장이 인력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 절차의 문제는 없다”고 해명했다.
지난 9월10일 남양주시청사에서 제7기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 위촉식이 열리고 있다. 남양주시 누리집
공공복지와 민간복지를 연계해 지역 내 복지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고 지역 특색에 맞는 효율적인 사회보장계획을 수립하도록 돕는 역할을 맡고 있는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직원들이 공무를 하지만 공무원이 아닌 ‘애매한’ 신분 탓에 잦은 ‘외풍’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1월에도 남해군의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사무국에서 10년 동안 일하던 직원 조아무개씨가 별다른 사유 없이 갑작스럽게 해고되면서, 조씨가 기자회견을 열고 실무위원장이 사퇴하는 일이 있었다. ‘전국지역사회보장협의체 사무국연합회’(사무국연합회)에 따르면, 경북 의성군·인천 남동구·경남 거제시 등에서도 사무국 직원들이 별다른 이유 없이 사퇴를 강요당하거나 사퇴하는 경우가 있었다.
지역사회보장협의체는 법적으로 각 시군구마다 하나씩 설치하게 되어있으며, 각 지자체의 사무국에서 상근직으로 일하는 직원들은 모두 231명(2018년 10월 기준)에 이른다. 하지만 상근직 직원들은 고용 안정성의 ‘사각지대’에 있다. 지역사회보장협의체는 지자체의 보조금을 받아 운영되지만, 별도의 사업자등록증을 갖고 있는 비영리법인이다. 사무국 직원들은 공무원과 유사한 일을 하지만 ‘공무원’이 아닌 탓에 신분보장이 되지 않고, 계약형태도 계약직·무기계약직 등이 섞여 있다. 2년 이상 같은 직장에 근무해 ‘정규직’ 직원이 된다 하더라도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에 속수무책이다. 사무국 직원들의 숫자가 지자체마다 1~3명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근로기준법상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별다른 사유를 제시하지 않고도 직원을 해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무국연합회 관계자는 “공공복지와 민간복지 사이의 다리를 역할을 하는 지역보장협의체 직원에게는 수년간 구축해온 ‘지역사회 내 네트워크’라는 전문성이 있다”며 “이런 전문성을 무시한 채 단지 시장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담당 공무원 눈 밖에 났다는 이유로 갑작스럽게 해고되는 일이 반복된다면 지역사회의 풀뿌리 복지 또한 유명무실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