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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강력 사건만 터지면 ‘조선족 괴담’…혐오에 멍드는 가슴

등록 2018-10-23 15:55수정 2018-10-24 10:59

인신매매·납치 등 강력범죄 “조선족 소행 아니냐” 의심
2015년 동일 인구 대비 내국인 범죄율이 더 높다는 분석도
전문가 “잔혹범죄 원인 외부의 타자에게 돌리는 경향”
“객관적 자료 없는 의심은 외국인 혐오증”
서울의 대표적 ‘차이나타운’인 영등포구 대림동의 모습.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서울의 대표적 ‘차이나타운’인 영등포구 대림동의 모습.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1. 2012년 8월 지하철 1호선 의정부역에서 한 남성이 아무런 이유 없이 흉기를 휘둘러 8명을 다치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39살이던 이 남성은 일용직 종사자 유아무개씨로, 같은 전철에 타고 있던 승객과 시비가 붙은 것 때문에 화가 나 지니고 있던 공업용 커터칼로 범행을 저질렀다. 경찰은 사건 발생 초반 유씨의 신상을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터넷에서는 “유씨가 조선족”이라는 소문이 퍼져나갔다. 이후 경찰이 “유씨는 경기도 연천에 주소를 둔 한국인”이라고 밝혔지만, 일부 누리꾼은 ‘불특정 다수에게 칼을 휘두른 행위가 마치 조선족 같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2. 2012년 7월 제주도 올레길에서 여성 관광객이 당시 45살이던 주민 강아무개씨에게 살해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제주도 올레길 살인사건’이라고 불리며 큰 이슈가 됐고, 그즈음 ‘조선족이 관련됐다’는 괴담이 떠돌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이 사건과 연결된 조선족 9명이 여성 2명을 납치, 인신매매했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경찰 조사 결과, 이 괴담은 당시 중학생 ㄱ양이 ‘서귀포에 납치범이 돌아다니고 있으니 문단속을 잘하라’고 올린 글이 확대재생산된 것으로 밝혀졌다.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잔혹한 수법의 강력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애먼 중국 동포들의 연루설이 퍼지면서 차별적 시선을 받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 14일 벌어진 서울 강서구 피시방 살인사건도 중국 동포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차별적 인식이 드러난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이 사건이 보도된 뒤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범인은 조선족’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피의자 김아무개(29)씨의 게임 아이디가 한자로 되어 있다는 점, 살인 수법이 잔인하다는 점, 경찰이 김씨의 자세한 신상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이 그 근거로 제시됐다.

22일 경찰이 김씨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면서 의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날 이례적으로 “피의자와 피의자 부모는 한국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피의자와 그 가족이 중국 동포라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게시된 <조선일보>의 ‘김씨는 조선족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는 기사 댓글을 보면, “김씨를 아는 동창은 신상을 올려달라. 진짜 조선족인지 귀화한 한국인인지 밝히자”(mifl****) “귀화했을 수도 있으니 출생지를 밝히라”(hhs3****) “부모가 귀화한 조선족으로 자식은 군 면제를 받기 위해 외국 국적을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towa****) 등의 댓글이 많은 추천을 받아 상위권에 노출됐다.

22일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올라온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기사 댓글들. 경찰은 피의자가 한국인이라고 밝혔지만 일부 누리꾼은 ‘피의자가 조선족 아니냐’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네이버 갈무리
22일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올라온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기사 댓글들. 경찰은 피의자가 한국인이라고 밝혔지만 일부 누리꾼은 ‘피의자가 조선족 아니냐’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네이버 갈무리
중국 동포의 범죄율이 높다는 세간의 인식은 편견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해 발간한 ‘공식통계에 나타난 외국인 범죄의 발생 동향 및 특성’과 경찰청 통계를 보면, 2015년 인구 10만명 기준으로 내국인 범죄자는 3369명이지만, 중국인은 1858명으로 동일 인구 대비 내국인의 범죄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통계에 나온 16개국 가운데 중국인의 범죄율은 중간 수준으로 1위인 몽골(3473명)의 절반 수준이었다. 살인, 강도, 강간, 방화 등 강력범죄도 마찬가지였다. 2016년 범죄 통계를 보면, 국적별 인구 10만명당 강력범죄자 수(163명)는 16개국 중 9번째였다.

중국 동포 김용필(49)씨는 “사고가 터지면 ‘중국 동포가 그랬을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억울하다. 중국 동포에 대한 인식 개선이 많이 됐지만, 그래도 오해를 받으면 서운하다”고 말했다. 김숙자 재한동포총연합회 이사장도 “매번 강력사건이 터지면 1호로 의심받는 게 중국 동포다. 이런 일이 있으면 가슴이 철렁한다”고 했다. 지난해 영화 <청년경찰>과 <범죄도시> 등에서 중국 동포들과 이들이 모여 사는 서울 대림동 등이 부정적으로 그려지면서, 중국 동포 70여명이 서울 대림역 인근에서 “대림동은 범죄자 소굴이 아니다”라며 ‘대림동 바로 알리기 홍보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사회비평가 박권일씨는 “상식을 넘어선 형태의 잔혹한 사건이 터지면 곧바로 ‘우리의 소행이 아니다’라는 사고방식이 작동하면서 원인을 외부의 타자에게 돌리는 경향이 있다. 중국 동포는 ‘한국인이면서 한국인이 아닌 존재’라는 독특한 지위 때문에 혐오와 공포의 대상으로 쉽게 지목된다”고 분석했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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