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영향으로 제자들이 옥고를 치른 햇수만 수백년은 족히 될 겁니다.”
광주시교육청은 24일 인권도시 광주의 기반을 다진 김용근(1917~1985) 선생을 재조명했다. 바람직한 광주교사상을 찾아 사표로 삼기 위한 움직임이다.
세계사 교사였던 그는 1917년 전남 강진군 작천면 현산리에서 태어났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그는 32년 평양 숭실학교로 유학해 5년 만에 졸업한 뒤 연희전문에 들어갔다. 학창시절 일제에 맞서 신사참배 거부, 농촌야학 개설, 총독 암살단 조직 등 사건에 얽혀 세 차례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엔 복학해 사학을 전공하고, 54~76년 전주고, 광주고, 광주일고, 전남고 등에서 22년 동안 교사로 근무했다. 마지막 학교였던 전남고에선 긴급조치 시기에 발생한 학생 시위의 책임을 지고 교단을 떠났다. 이후 고향인 강진에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향토문화를 연구하고 노인대학을 창설했다. 80년 5·18민주화운동 때는 지명수배를 받은 제자들의 피신을 도왔다는 혐의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석방되자 다시 고향에서 지역교회 활동을 하다 85년 숙환으로 별세했다.
사후인 87년 독립유공자로 추서됐고, 2002년 5·18유공자로 인정됐다. 그를 추모하는 제자들은 90년 김용근 선생 기념사업회를 만들고 95년부터 김용근 민족교육상을 제정해 시상해왔다.
그가 가르쳤던 윤한봉·이양현·정찬용·이훈우·정용화·문승훈·김양래 등 제자들은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남조선민족해방전선, 5·18민주화운동 등을 거치며 민주화의 여정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광주교사상을 세우기 위한 이날 토론회에선 김용근 선생의 교육정신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기조발제자인 고형일 전남대 명예교수는 “스승은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주고 동조하는 이들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그는 ‘역사의 주체가 되자’, ‘세상을 보는 안목’, ‘민중 속으로’ 등을 강조해 제자들의 삶을 바꾸었다”고 소개했다. 은우근 광주대 교수는 “그는 일제 강점기엔 신사참배를 거부해 자주의 의지를 드러냈고, 군사 독재기엔 분단이념과 성공신화의 미망에 갇힌 청춘들을 역사 앞으로 불러냈다”고 평가했다. 제자인 최연석 목사는 “자신은 양복 한 벌로 버티면서도 제자들한테는 무엇이든 베풀려고 했다. 가르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가르친 대로 온몸으로 살아낸 실천적 지식인이었다”고 회고했다.
광주시교육청은 연말까지 그의 생애와 철학을 정리하고, 내년부터 교사 연수나 학교 강의에 활용하기로 했다.
안관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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