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2012년 12월20일 서울고법에서 열린 2심 재판에서 징역 4년6개월과 벌금 10억원을 선고받고 침대에 누운 채로 구급차에 오르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2011년 1월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됐다가 그해 4월 간암 등을 이유로 구속집행 정지, 이듬해 6월 보석으로 풀려난 이호진(56) 전 태광그룹 회장이 이번에도 수감을 면했다. 이 전 회장은 8년 가까이 재판을 받는 동안 병원 입원과 보석을 거듭해, 실제 수감 기간은 63일에 불과하다. 서울서부지법→서울고법→대법원→서울고법→대법원까지 5번 재판을 받는 동안 그가 선임한 변호사는 전직 대법관 2명을 비롯해 113명(중복 선임 제외 77명)에 달한다. 앞으로도 서울고법을 거쳐 대법원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보석 상태로 재판을 받게 된 탓에 보석을 취소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25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횡령 등 혐의로 기소된 이 전 회장 사건 재상고심에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다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이 전 회장이 ‘금융사지배구조법’에서 규정한 ‘금융회사의 최대주주 중 최다출자자 1인’(적격성 심사 대상)에 해당한다면, 이 전 회장의 조세포탈 관련죄는 다른 죄와 분리해서 심리·선고해야 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다시 하라고 판결했다. 함께 기소된 태광산업만 벌금 3억원의 원심이 확정됐다.
이 전 회장은 검찰과 법원이 보석 취소 절차를 밟지 않는 한 앞으로도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다. 그러나 이 전 회장이 간암과 대동맥류 질환으로 거동이 불가능하다는 2012년 보석 사유와 달리, 최근 집 밖에서 술을 마시는 모습이 목격되는 등 정상인과 다름없이 행동한다는 <한국방송>(KBS) 보도가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이 전 회장은 ‘무자료 거래’와 허위 회계처리 등을 통해 회삿돈 500억여원을 횡령하고 회사에 900억여원의 손해를 입힌 혐의로 2011년 1월 구속기소됐다. 법인세 등 9억3천여만원을 포탈한 혐의도 받았다. 1·2심 재판부는 혐의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해 이 전 회장에게 징역 4년6개월을 선고했다. 벌금은 10억원이었다.
그러나 2016년 8월 대법원 3부(당시 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공소사실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횡령액을 다시 산정해야 한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에 서울고법은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횡령액을 다시 산정해 205억원에서 195억원으로 줄이고 형량도 징역 3년6개월에 벌금 6억원으로 감형했다. 당시 김능환 전 대법관 등 변호인 15명이 붙었다.
그런데 이날 대법원은 재상고심에서 2016년 판결 때에는 지적하지도 않았던 새로운 이유를 들어 원심 판결을 다시 파기했다. 조세포탈 혐의를 다른 죄와 분리해 따로 심리·선고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안대희 전 대법관과 김상준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 변호인단(10명)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한편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이 전 회장이 과거 보석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거짓 서류’를 제출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채 의원은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검찰이 이처럼 ‘법원을 기망한 행위’를 직접 수사할 수 있느냐”고 물었고, 문 총장은 “거짓 서류를 제출했다면 그 부분은 수사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답했다.
여현호 선임기자
yeop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