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 농단'의 핵심 실무를 맡았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은 임 전 차장에 대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공무상 비밀누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국고손실, 허위공문서작성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을 공범으로 적시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26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가 6시간 만에 끝났다. 임 전 차장은 “행정처 심의관은 복종 의무에 따른 것” “행정처는 민원을 들을 수 있다”며 자신의 혐의를 완강히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 전 차장 쪽은 “검찰이 수사를 잘해서 진실을 밝혔지만, 결과적으로 죄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고한다.
임민성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4시20분께까지 임 전 차장의 구속영장심사를 진행했다. 임 부장판사는 오후 1시40분께까지 3시간 동안 ‘마라톤 심리’를, 이어 20여분 휴정한 뒤 오후 2시 곧바로 심문을 재개했다.
임 전 차장은 검찰 조사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소송 △통합진보당 행정소송 및 재산 가처분신청 사건 △고용노동부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처분 소송서류 대필 △부산 법조비리 은폐 △박근혜 전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 형사사건(가토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 개입 혐의 등을 받는다. 임 전 차장과 변호인은 “(재판개입 및 관련 문건 작성 지시가) 부적절할 수 있으나 죄가 되지는 않는다” “직원들이 알아서 한 것에 불과하다” 등 주장을 편 것으로 알려졌다.
임 전 차장 쪽은 영장심사 내내 “청와대가 손발이 없어서 부장판사 출신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도와준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전교조 사건에서 고용노동부의 재판서류를 대필하고 청와대 쪽에 각종 법리 검토보고서를 만들어 넘긴 혐의와 관련해 내놓은 주장이라고 한다. 사실관계를 전혀 부인하지 못하자, ‘죄가 안된다’고 주장하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사실상 ‘법원행정처=청와대 하청업체’라는 식이다.
특히 임 전 차장 쪽은 “행정처 심의관들에게는 ‘복종 의무’가 있으므로 행정처 차장 등 지시로 권리행사를 방해받지 않았다”는 주장을 했다고 한다. 행정처 심의관들은 ‘상관’인 자신의 지시를 따르는 ‘하급자’에 불과해 반대할 권리가 없다는 논리다.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의 ‘권리행사방해’를 부정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검찰은 “부당한 지시에는 따를 의무가 없다”고 반박했다고 한다. 임 전 차장 쪽은 일선 법원 판사들에게 동료 법관 뒷조사를 지시했다는 혐의 등에는 ‘행정처와 일선 법원 사이에 직무상 권한(직권) 자체가 없다’고 반박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임 전 차장 변호인은 일부 재판개입 혐의와 관련해 “임 전 차장은 해당 법원 상급자에게 말했을 뿐 재판장에게 말하지 않았다. 해당 재판장이 상급자 말을 듣고 판결문을 썼다면 판사 자격이 없다”는 주장까지 폈다고 한다.
임 전 차장과 변호인은 이날 재판개입 관련 혐의를 부인하며 “고위법관들이 행정처 의견에 따라 판단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고 한다. 이는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을 부른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들의 압수수색 영장 기각 사유를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영장전담판사들은 “대법관이 일개 심의관 문건에 따라 재판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관련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한 바 있다.
박근혜 청와대와 대표적 재판거래 사안으로 꼽히는 일제 강제징용 사건 관련해서는 “판사는 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야 한다. 재판부에 여러 의견을 참고로 전달한 것에 불과하다. 검찰이 재판 구조를 모르는 것”이라고 오히려 ‘역공’했다고 한다. 재판 당사자도 아닌 청와대의 요구를 “사회의 다양한 의견”으로 포장한 것이다. 이에 검찰은 “행정처의 재판개입으로 징용 재판에서 피해자들은 전범 기업과 대등한 위치를 누리지 못하게 됐다”고 반박했다고 한다.
임 전 차장 쪽은 홍일표 자유한국당 의원과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재판을 받고 있는 정치인의 소송 전략을 검토해주도록 지시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이에 임 전 차장 변호인은 “민원을 들어준 것에 불과하다. 행정처가 의원 민원을 들어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취지로 주장했다고 한다.
국회 위증 혐의에 대해서는 “국회가 고발을 안 할 것”이라는 자신감도 내비쳤다고 한다. 임 전 차장은 2014~15년 행정처 심의관들에게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리며 의원직까지 박탈한 헌법재판소 판단을 ‘월권행위’라고 정리한 문건을 작성하게 했다. 그러나 이듬해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행정처 차원에서 그런 문건을 생산한 적 없다”고 거짓증언한 혐의를 받는다. 국회 위증은 국회 고발이 있어야 기소할 수 있는데, 국회가 자신을 고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한 것이다. 검찰은 국회에 고발의뢰를 한 상태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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