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청사 전경.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중국 특유의 인간관계 문화인 '관시(關係·인맥)’를 맺어 중국 공장의 토지사용 허가를 받기 위해 회삿돈으로 억대 로비를 한 회사 간부들이 무죄를 확정받았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업무상 배임 혐의로 기소된 전직 식품회사 부사장 겸 중국 공장 총경리(현지 사장) 정아무개(62)씨와 이 회사 관리이사 겸 중국 공장 부총경리였던 서아무개(49)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8일 밝혔다.
한 식품회사의 중국 공장 간부였던 정씨와 서씨는 지난 2012년 중국 산둥성 공장의 공장용지 1만8904㎡에 대한 토지허가증을 발급받기 위해 본사 승인 없이 110만 위안(1억9800만원 상당)을 회사 명의로 빌려 중국 공무원들에게 건네고 토지허가증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회사 경영진의 반대에도 돈을 빌려 로비자금으로 쓴 이상 업무상 배임죄의 고의가 있었다고 인정할 수 있다"고 유죄로 판단해 정씨와 서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각각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정씨 등이 회삿돈을 토지허가증을 받기 위한 로비자금으로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기업활동을 하면서 형사상의 범죄를 수단으로 하여서는 안 되므로 뇌물공여를 금지하는 법률 규정은 준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반에, 2심 재판부는 1심을 깨고 두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국내 본사 경영진이 정씨 등에게 회삿돈으로 로비자금을 지출해서는 안 된다는 지시를 했다고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자료를 발견할 수 없다. 정씨가 토지허가증 취득을 위해 예상되는 ‘관시’ 비용을 명시한 보고서나 이메일을 보내는 등의 정황을 보면 회사와 본사 경영진의 지시 또는 동의 아래 돈을 빌려 로비자금으로 썼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원심 재판부는 “공개행정과 법치주의가 확립돼 있다고 보기 어려운 중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으로서는 공장을 건설하는 핵심 조건인 토지허가증을 얻기 위해 중국의 공무원들과 인적 관계를 잘 형성하여 두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였으리라고 보인다”며 관시 활동이 업무상 임무에 위배되는 배임 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어 원심 재판부는 “정씨 등의 행위로 회사가 토지허가증을 박탈당했다거나 다른 피해를 입은 것이 없다. 로비자금 등 지출 명목이 불분명한 용도로 사용하였고 그 증빙자료를 갖추어 놓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는 배임 행위를 했다거나 그런 고의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회사에 손해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원심의 이런 판단을 그대로 인정했다.
여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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