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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70년 만에 법정에서 ‘진술거부권’ 고지받은 4·3 피해자들

등록 2018-10-29 20:07수정 2018-10-29 21:18

제주 4·3 재심 첫 공판
70년 전 군사재판에선 당사자 확인, 진술거부권도 없이 유죄 확정
수사기록도 없는데…검찰 “피고인에게 물어서 지은 죄 확인하겠다”
변호인 “검사도 모르는 공소사실…곧바로 공소기각 판결해야”
제주 4·3 당시 군법회의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형무소에 수감된 수형인들이 30일 오후 재심 첫 재판을 앞두고 제주지방법원 앞에 모였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제주 4·3 당시 군법회의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형무소에 수감된 수형인들이 30일 오후 재심 첫 재판을 앞두고 제주지방법원 앞에 모였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김평국 할머니?”(판사) “손 들면 되나요?” “박동수 할아버지?” “네!”

29일 오후 4시 제주지법 201호 법정. 제주 4·3 수형인 16명이 참석한 가운데 재심 공판이 70년 만에 열렸다. 지난달 재심 개시가 결정된 수형인 18명 중 몸이 불편한 박순석(90), 정기성(96)씨는 법정에 나오지 못했다. 16명의 인정신문(소송 당사자가 맞는지 확인하는 절차)을 마친 제주지법 형사2부 제갈창 부장판사는 “법정에서 피고인 진술은 증거로 사용되기 때문에 피고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법률이 진술거부권이라는 걸 보장하고 있다”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인정신문도, 진술거부권도 없던 70년 전 군사재판(고등군법회의)에서 유죄가 선고됐던 수형인들이 처음으로 ‘재판다운 재판’을 경험한 것이다.

검찰의 입장은 달랐다. 수사기록도 재판기록도 남아 있지 않은 이 사건에서 18명이 지었다는 죄를, 즉 공소사실을 우선 구체적으로 입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제주지검 정광병 검사는 “1948년 군법회의 재판을 받은 10명은 1948년 4~11월 사이 대한민국 정부를 전복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켰다. 1949년 군법회의 재판을 받은 8명은 1948년 4~6월 사이 적을 구원·보호하거나 간첩으로 행동했다”며 옛 형법 내란죄와 국방경비법 32조를 그대로 공소사실로 제시했다. 정 검사는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공소기각 판결을 한다면 70년 만에 열리는 역사적인 재심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 피고인 신문으로 최대한 공소사실을 특정하려 노력한 뒤 법원 판단을 받으면 피고인도 정당한 재판을 받았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무죄를 주장하는 피고인에게 일단 ‘무슨 죄로 수감됐는지’ 물어서 공소사실을 확정하겠다는 취지다.

변호인들은 정작 검찰도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르기 때문에 곧바로 공소기각 판결을 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형사소송법은 범죄를 저지른 날짜·장소·방법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으면 죄를 물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수형인들을 대리하는 김세은 변호사는 “구체적인 공소사실은 검사가 특정해야 한다. 재판기록을 관리·보존할 책임이 국가에 있는 것을 고려하면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 불이익을 피고인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임재성 변호사도 “70년 전 당사자들 대부분이 이유도 모른 채 잡혀갔는데, 검찰이 하겠다는 피고인 신문은 죄를 자백받은 뒤 기소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재판부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한편, 올해 말이나 늦어도 내년 초 재심 결론을 내겠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연로해서 한분이라도 잘못되면 재판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판이 지연되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 다만 (이번 재심이) 다른 재판의 자료로 쓰일 수 있다는 검찰 쪽 주장도 일리가 있고, 경우에 따라서 피고인들에게 더 나은 결과가 나올 수 있으니 피고인 신문 기회를 주겠다”고 정리했다.

김평국(88)씨는 법정에 들어가며 “재심 개시 결정을 듣고 날아갈 것 같았다. 늙은 사람들이 한 번씩 모이는데 힘이 들어서 오기 힘드니 빨리 잘해주면 고맙고 좋은 일이니 오늘도 잘 말해봐야지”라고 말했다. 1시간여 진행된 재판이 끝난 뒤 임 변호사는 김씨의 손을 잡고 “검사가 한 번 더 물어보겠다고 한다. 다 무죄 받으실 수 있으실 거다”라고 위로했다.

제주/글·사진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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