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판결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결론은 바뀌지 않았다. 2012년 대법관 4명이 참여한 대법원 소부 판결, 2018년 대법관 13명이 모두 참여한 전원합의체 판결은 주요 쟁점에서 대부분 같은 판단을 했다.
①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개인 청구권 소멸됐나
핵심 쟁점인 ‘한-일 청구권협정 적용 대상에 개인 청구권이 포함되는지’에 대해 2012년 대법원은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30일 나온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도 대법관 다수의견(7명)은 2012년 판결에 동의했다. 다수의견은 우선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미지급 임금이나 보상금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일본 정부의 불법적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군수업체의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이라고 봤다.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끌려가 돈도 받지 못하고 감금 상태에서 강제노역과 구타에 시달렸던 징용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라는 것이다.
이어 △1952년 한-일 회담 이후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때까지 일본이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언급하는 내용이 없는 점 △1965년 정부가 발간한 ‘한일회담백서’에도 “한-일간 청구권 문제에는 ‘손해 및 고통’에 대한 배상청구를 포함시킬 수 없다”고 명시된 점 △협상 당시 일본이 강제동원 피해에 대한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한 점 △한국 정부 요구액(12억2천만달러)에 한참 못 미치는 3억달러에 강제징용 위자료가 포함됐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다수의견은 1961년 제5차 한-일 회담 예비회담에서 한국 정부가 ‘피징용자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대한 보상’을 언급했다며 일본 기업이 추가 제출한 증거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당 발언은 “공식 견해가 아닌 교섭 담당자가 협상에서 유리한 지위를 점하려는 발언에 불과”하며, 실제 제5차 협상이 일본의 반발로 타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권순일·조재연 대법관은 “청구권협정문의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 해결’이라는 표현은 더 이상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의미”라며 “청구권협정이 헌법이나 국제법에 위반하지 않는다면 그 내용이 좋든 싫든 따라야 한다”고 반대의견을 냈다. 두 대법관은 대신 “대한민국은 피해를 입은 국민에게 소송 제기 여부와 관계없이 정당한 보상이 이뤄지도록 할 책무가 있다”고 했다.
이기택 대법관은 다수의견과 같은 결론을 내면서도 “2012년 5월 대법원 판결의 기속력(하급심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이번에도 같은 판결을 해야 한다”는 별개의견을 냈다. 김소영·이동원·노정희 대법관은 다수의견과 달리 청구권협정에는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도 포함됐다고 판단하면서도 “청구권협정으로 일본에 대한 우리 국민의 배상 청구권을 한국 정부가 ‘외교적으로 보호할 수단’을 상실한 것에 불과하다”며 개인 청구권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별개의견을 냈다.
② 피해자들의 청구권 소멸시효가 이미 지났는가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소송이 제기된 2005년 2월 당시까지도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 사유가 객관적으로 있었다고 할 수 있다”며 2012년 대법원과 같은 판단을 했다. 앞서 대법원은 “적어도 징용 피해자들이 국내에서 소송을 낸 2005년 2월까지는 객관적으로 권리를 사실상 행사할 수 없는 장애 사유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일본 기업인 신일철주금이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2005년 1월에야 국내에서 청구권협정 관련 문서가 공개됐고, 그해 8월 한-일 회담 문서공개 후속대책 민관공동위원회가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고 볼 수 없다’고 밝힌 점 등이 근거로 제시됐다.
③ 일본 법원 확정판결의 국내 효력
징용 피해자인 여운택·신천수씨는 1997년 일본 법원에 손해배상금 및 임금 지급 소송을 냈다가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패소가 확정됐다. 이 판결에 따라 국내에서 같은 소송을 내는 것이 불가능한지에 대해 2012년 대법원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당시 대법원은 “일본 판결은 일본의 식민지배가 합법이라는 전제 아래 일제강점기 당시의 국가총동원법, 국민징용령 등 법령이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이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며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도 같은 의견이었다.
④ 일제 전범기업의 책임을 지금의 일본 기업에 물을 수 있나
2012년 대법원은 “현재의 신일본제철(합병 뒤엔 신일철주금)이 여씨 등을 강제동원한 옛 일본제철을 그대로 승계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며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당시 대법원은 “신일본제철은 옛 일본제철의 영업 재산, 임원, 종업원을 실질적으로 승계해 회사의 인적·물적 구성에 기본적인 변화가 없었다”는 이유를 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도 이견이 없었다.
여현호 선임기자
yeop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