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청사 전경.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공사기한이 정해진 공공 입찰계약에서 공사를 발주한 공공기관의 책임으로 완공이 늦어졌더라도 추가비용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장기 공사는 실제로는 사업연도별로 따로 계약을 맺어 진행하므로, 애초 정한 공사 기간을 어겼다는 이유로 계약금액을 다시 조정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0일 지하철 7호선 연장공사에 참여한 대림산업 등 12개 건설사가 국가와 서울시를 상대로 낸 공사대금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일반적으로 장기계속계약의 당사자들은 총 기간이나 금액 등 ‘총괄계약’을 맺지만, 이는 각 연차별 계약을 맺을 때 잠정적 기준으로 활용할 뿐이다. 총괄계약은 상대방을 정해 계약을 이행하기로 약속하고 계약 단가를 정하는 수준에서만 구속력을 가질 뿐이며, 총 공사 기간의 범위나 계약 기간 등은 해마다 맺는 연차별 계약`에 의해 확정된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소송을 낸 12개 건설사는 2004년 12월 서울 지하철 7호선 연장공사에 참여했다. 공사는 2011년 3월 완공 예정이었으나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총 공사 기간이 21개월가량 연장됐다. 이에 건설사들은 “공사 기간 연장에 따라 추가로 지출된 간접공사비를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재판에서는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서 맺는 ‘장기계속계약’ 상의 총괄계약이 계약금액을 조정할 수 있는 별도의 구속력 있는 계약으로 볼 수 있느냐가 쟁점이 됐다. 장기계속계약에서는 총괄계약 외에 회계연도마다 확보된 예산에 맞춰 연차별 계약을 맺는 식으로 이행된다.
1·2심 재판부는 “총 공사 기간과 대금에 대해 체결한 총괄계약은 당사자 사이에 구속력이 있고, 연차별 계약은 총괄계약에 구속돼 예산 범위 안에서 체결되는 것”이라며, 서울시가 건설사들에 모두 141억여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단은 달랐다. 전원합의체 다수의견은 “총괄계약은 총 기간이나 금액 등 조건에 대한 확정적인 의사의 합치가 아니라, 연차별 계약에 연동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다수의견은 “장기계속계약은 총공사금액과 총공사 기간에 관하여 별도의 계약을 체결하고 다시 사업연도별로 계약을 체결하는 형태가 아니라, 우선 1차연도의 제1차 공사에 관한 계약을 맺으면서 총금액과 기간을 부기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사업 기간이 연장되면 연차별 계약을 추가로 맺으면서 총금액과 기간도 변경되는 것이지, 총괄계약을 변경하는 계약이 따로 맺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소영·조희대·김재형·노정희 대법관은 “다수의견은 국가계약법이 추구하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 장기계속공사 계약에 적용되는 법령이나 계약조건 규정의 해석이 불분명하면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을 적용해 국가가 이로 인한 불이익을 받는 것이 옳다”고 반대 의견을 냈다.
이번 판결은 장기계속공사의 운영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정한 것으로, 민간업체와 국가·지자체 사이의 비슷한 분쟁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여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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