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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전문가가 말하는 강서구 주차장 살인 피의자의 세 가지 전형성

등록 2018-10-30 19:23

폭행-사과 반복, 피해자는 무기력 학습
경찰 신고 꺼리고 ‘폭행의 늪’ 속으로
“반의사불벌죄 없애고 적극 개입해야”
그래픽 정희영 기자 heeyoung@hani.co.kr
그래픽 정희영 기자 heeyoung@hani.co.kr
아파트 주차장에서 전 부인을 살해한 ‘강서구 주차장 살인사건’의 피의자 김아무개(49)씨는 가정폭력범이 가지는 전형적인 행동을 고스란히 반복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폭력 뒤 잘못을 비는 행위 △아내에게 집착하는 행위 △밖에서는 다정한 남편으로 행세하는 모습 등이 가정폭력범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폭력에 길든 피해자는 폭력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무기력’에 빠지게 된다. 전문가들은 가정폭력에 대해 반의사불벌죄를 폐지하는 등 가정폭력처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폭행, 사과, 폭행…피의자는 전형적인 가정폭력범

피해자의 둘째 딸 김아무개(21)씨는 29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가해자인 아버지가 어머니를 협박하고 폭행한 뒤 사과하고 다시 폭행하기를 반복했다고 말했다. (▶바로 가기: ‘강서구 주차장 살인사건’ 딸 “아빠는 우리를 끝없이 통제했다”)

김씨는 “(아버지가 엄마에게) 폭력을 휘두른 다음엔 애정 표현을 하거나 용서를 구하기도 했다”며 “2015년 2월 (아버지에게 심하게 폭행을 당한 뒤) 엄마가 도망을 가자 아빠는 엄마에게 카톡으로 ‘죽여버리겠다’, ‘어디냐’며 협박하다가도 갑자기 ‘미안해’, ‘아팠지’, ‘사랑해서 그랬다’는 문자를 보냈다”고 밝혔다. 자신을 태권도 띠나 벨트로 손목을 묶어놓고 때린 뒤 이내 연고를 들고 와 발라줬다고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행동이 가정폭력 가해자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19년째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을 하는 허순임 전국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협의회 상임대표는 “폭력 행사 뒤 사과하기, 약 발라주기 등은 폭력 사이클의 전형”이라고 분석했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 역시 “(가정폭력 가해자는) 혼인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폭행한 뒤 사과하는 등 폭행을 덮기 위한 애정 공세를 하곤 한다”며 “이 때문에 피해자는 경찰에 신고했다가도 고소의 뜻을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가정폭력은 ‘반의사불벌죄’라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형사처벌을 할 수가 없다. 결국 계속되는 폭행에도 가해자는 형사처벌을 받지 않고 피해자는 폭력의 늪으로 빠져든다.

전문가들은 외부에서 ‘좋은 남편’인 것처럼 행동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돌변하는 이중적인 모습 또한 폭력 남편의 전형이라고 설명했다. 딸의 말을 종합하면, 가해자는 지인을 만나는 자리에서 ‘나는 이렇게 가정적인 사람이야’라고 말하거나 엄마에게 밥을 떠먹여 주는 등 좋은 남편인 것처럼 자신을 포장했다. 지인들을 만나는 자리에 항상 가족을 데리고 다닌 것도 자신을 그렇게 포장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이에 대해 허 상임대표는 “가정폭력 쉼터에 입소한 피해자를 때린 가해자의 80~90%는 사회적으로 ‘양반’, ‘호인’ 등의 소리를 들으나 가정에선 폭군으로 돌변했던 사람들”이라며 “가해자의 이중적 태도로 인해 피해자나 자녀는 가정폭력을 공개하기 어려워지고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받기도 힘들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도 “피의자의 이중적 태도는 ‘경계선 성격장애’의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경계선 성격장애란, 성격장애의 하나로 불안정한 대인관계, 반복적인 자기 파괴적 행동, 극단적인 정서변화와 충동성을 나타내며 분노조절이 어렵다거나 자해 행동을 보이는 특징이 있다. <한겨레>가 지난 4월 다뤘던 ‘스토킹살인은 편견을 먹고 자란다’ 기획 시리즈 가운데 두 번째 기사(▶바로 가기 : ‘스토킹 남편’ 성폭행 신고한 날, 아내가 살해당했다)에 등장하는 아내 살해범 이재형(가명·25)씨도 이와 비슷하게 폭행과 용서 구하기를 반복했다. “사람들이 아내를 쳐다보는 것도 싫다”고 말하며 통제와 집착을 드러냈다. 이 교수는 “피의자는 피해자가 떠날 것을 두려워해 집착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또한 경계선 성격장애의 증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폭행 뒤 사과로 가해자는 무기력 학습

문제는 피의자의 이런 행동들이 피해자에게 무기력을 학습하게 한다는 점이다. 피해자는 경찰에 신고해도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학습된 무기력’을 느끼고 경찰 신고 등을 꺼리게 된다. 심지어 가정폭력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실제 피해자의 딸 김씨는 “어려서 폭행을 당할 때마다 ‘우리 집뿐만 아니라 다른 집도 그러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훈육이란 그늘 아래 얘기해왔기 때문에 ‘다른 집안도 그렇겠지’ 싶었다”며 “맞을 때마다 ‘경찰에 신고하고 싶어도 얘기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있을까’, ‘이런 것으로 경찰에 신고해도 되나’ 싶어 도움 요청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 같은 현상을 ‘자기방어적 인지 왜곡’으로 설명했다. 이 교수는 “폭행으로 굉장히 생명이 위험한 상황인데, 이런 위험을 과소평가하거나 ‘어쩔 수 없다’는 무기력 상태에 빠지게 된다“고 밝혔다. 허 상임대표 역시 ”가해자가 폭력 뒤 다양한 방법으로 합리화를 했는데, 이런 과정에서 자녀들이 가정폭력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가해자는 폭력 뒤 합리화의 방식으로 미안해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데 이렇게 양육된 자녀들은 폭력을 사랑과 관심의 하나로 인식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폭력 가정에서 벌어지는 이런 학습된 무기력을 학계에서는 ‘매 맞는 아내 증후군(Battered Woman Syndrome)’이라고 부른다. 폭행한 남편이 잘못을 뉘우치다 다시 폭행하는 상황이 반복되면, 피해 여성은 무기력을 느끼고 개선 의지를 상실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2016년 여성가족부의 가정폭력실태조사 통계에도 가정폭력 피해자의 10명 가운데 6명 이상은 무기력을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폭력 피해를 경험한 여성 응답자의 63.9%가 폭력 당시 ‘그냥 있었다’고 답했으며, ‘주위에 도움을 요청했다’는 비율은 단 1.1%에 그쳤다. 가만히 있었던 이유는 ‘그 순간만 넘기면 돼서(28.6%)’, ‘배우자이기 때문에(21.9%)’ 등이었다. 허 상임대표는 “가정폭력은 처음에는 폭언, 정서적 폭력으로 시작해 살해 위협 등 점차 흉포화되는 경향을 보인다”며 “경미한 폭력은 피해자나 자녀가 폭력으로 인식하기 어렵고 폭력이라고 인식하는 순간에는 거의 죽음에 대한 공포까지 와 있는 상황이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 “가정폭력처벌법 반의사불벌죄 개정해야”

가정폭력에 대해 수사기관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처벌할 수 있게 법 개정이 되어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우선 가정폭력처벌법에 있는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피해자가 아닌 수사기관이 처벌 여부를 판단할 수 있게 바꿔야 한다는 설명이다. 허 상임대표는 “가해자가 아이 아빠라는 점, 처벌이 강하지 않을 거라는 점 때문에 피해자가 고소하더라도 취하하는 경우가 많다”며 “피해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처벌한다고 해야 피해자도 책임에서 벗어나고 경찰에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도 “형사 사건화하면 경찰이 의사결정권을 갖게 되니까 책임이 커진다”며 “수사기관의 재량권을 넓혀주면 가정폭력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검사가 가정폭력 사건에 내리는 ‘상담조건부 기소유예’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상담조건부 기소유예는 가정폭력 가해자가 가정폭력상담소에서 상담을 받는 조건으로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해주는 제도다. 허 상임대표는 “(수사기관이) 상담조건부 기소유예 제도를 과신하는 것 같다”며 “상담이나 교육으로 개선이 가능하다고 보는 시각인데, 상담조건부 기소유예 뒤 재범률 등을 면밀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도 “자칫 가정폭력사범에게 면죄부만 주는 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신민정 박윤경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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