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신세계면세점. 신세계면세점 제공.
신세계가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에서 일하는 협력업체 직원들의 식권을 내걸고 직원들의 출퇴근 환경이 더 나빠지는 방향으로 셔틀버스 운영 방침을 바꾸려고 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31일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협력업체 직원들과 민주노총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의 설명을 종합하면, 신세계디에프와 신세계디에프글로벌은 이달 22일부터 25일까지 협력업체 직원들 대상으로 ‘복리후생 통합운영 투표’를 진행했다. 두 가지 선택지가 제시된 이 투표에서 협력업체 직원들은 ‘식권을 아예 없애고 셔틀을 확대’(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과 제2여객터미널 통합 셔틀버스 운영)하거나 ‘식권을 20장으로 늘리고 셔틀을 아예 폐지’하는 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지금까지 신세계 쪽은 협력업체 직원들에게 매달 식권을 12장씩 지급하면서 제1여객터미널과 제2여객터미널에 각각 4개씩 모두 8개 노선의 셔틀버스를 운행해왔다. 두 여객터미널은 19㎞ 정도 떨어져 있어 자동차로 20~30분 정도 걸린다.
이달 중순께 신세계면세점 인천공항점의 한 점장이 직원들에게 보낸 셔틀버스 관련 투표 안내 메시지다. 민주노총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제공
현장 직원들은 두 가지 선택지 가운데 매달 12장씩 지급하던 식권을 없애고 두 여객터미널 셔틀버스를 통합해서 운영하는 방안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인천국제공항이 외딴 섬에 있고, 면세점은 새벽 6시30분부터 밤 9시30분까지 운영되는 탓에 대중교통 출퇴근이 힘들기 때문에 직원들은 셔틀버스가 없으면 출퇴근 자체가 난망해진다. 이 때문에 직원들이 투표에서 식권을 없애더라도 셔틀버스를 유지하는 방안을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선택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하지만 차로 20∼30분 거리인 두 여객터미널의 셔틀버스를 하나로 통합 운영하면, 직원들의 출근 시간은 더 당겨지고 퇴근 시간은 더 늦어지게 된다. 올 초부터 두 여객터미널을 통합해 셔틀버스를 운영되고 있는 같은 인천국제공항의 신라면세점 한 직원은 “‘셔틀버스 통합운영 방침’이 시행된 이후로, 출근 셔틀버스가 1터미널에 들렸다 2터미널에 가기 때문에 이전보다 30분 일찍 출근하게 됐고, 반대로 퇴근할 때는 2터미널 직원들을 태우고 1터미널에 오기 때문에 퇴근 시간이 더 늦춰졌다”고 말했다. 판매직 노동자들은 밤늦게 퇴근하고 이어서 다음날 새벽에 바로 출근을 해야 하는 스케줄 근무를 일상적으로 소화해야 하는데, 셔틀버스 통합운영으로 수면권을 더 침해받게 된 것이다.
신세계면세점이 지난 22일부터 25일까지 진행한 셔틀버스 관련 투표의 투표용지다. 민주노총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제공.
새벽녘과 밤늦은 시간에 외딴 섬을 오가야 하는 직원들(▶
참고 기사 :
‘쇼윈도 노동의 눈물’ 기획 시리즈)에게 출퇴근 셔틀버스는 생계와 건강이 달린 절실한 문제다. 이 때문에 신세계 쪽은 제2여객터미널이 개장했던 지난 1월에도 “셔틀버스 운행 횟수를 줄이고 기존 노선도 축소 변경”하려는 방침을 마련했다가 직원들의 반발에 부딪혀 철회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신세계 쪽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직원들이 계속 셔틀버스 노선 확대를 요구해와서 정확히 알아보고자 의견 수렴 차원에서 투표를 진행한 것”이라며 “투표 결과나 향후 셔틀버스 운영 방침 등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해명했다.
사실 인천국제공항에 입점해 있는 대기업 면세점들의 ‘비용 줄이기’ 문제는 신세계면세점만의 문제는 아니다. 신라면세점과 롯데면세점은 올 1월 일방적으로 두 여객터미널 셔틀버스 통합 운영방침을 직원들에게 통보하고 지금까지 그 방침을 이어오고 있다. 한 면세점 노동자는 “롯데면세점이 가장 먼저 셔틀버스를 통합운영 하면서 하루 여섯 차례 운행하던 방침을 오픈조 출근과 마감조 퇴근 시간에만 운행하는 쪽으로 축소했다”며 “아울러 식권과 세탁권 지급도 함께 중단됐다”고 털어놨다.
이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인천국제공항이 나서서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비스연맹 쪽은 “제2여객터미널 개장을 계기로 면세점마다 셔틀버스와 관련한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며 “궁극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나서야 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들은 “출퇴근 셔틀버스와 관련한 문제는 면세점 판매직 노동자뿐만 아니라 청소, 경비 등 공항에서 일하는 수많은 직원에게 적용되는 문제”라며 “이 때문에 인천국제공항공사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지금은 면세 사업자들에게 이 문제를 떠넘기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