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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단독] 국내 최대 회계법인 ‘삼일’에 노조 뜬다

등록 2018-10-31 11:34수정 2018-10-31 12:01

민주노총 소속으로 11월 출범 목표
사쪽, 근로자대표 선출과정서 ‘꼼수’
공동대표 선출탓 직원들 반발 불러
“회계사 고강도 노동 알리는 계기될 것”
용산 LS타워에 있는 삼일회계법인.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용산 LS타워에 있는 삼일회계법인.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소속 회계사만 1700여명에 이르는 국내 최대 회계법인인 삼일회계법인에서 노동조합 설립이 추진되고 있다. 국내 회계법인에서 노동조합이 설립이 추진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업계 안팎의 관심이 모인다.

31일 회계 업계에 따르면, ‘삼일회계법인 노동조합 설립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가 최근 발족해 삼일회계법인 직원들로부터 추진위 가입 신청서를 받고 있다. 민주노총 산하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소속으로 설립될 예정인 이번 노조는 11월 중순께 정식 출범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일회계법인에서 일하는 한 회계사는 “철저한 익명으로 조심스럽게 진행되고 있지만 이미 가입 신청자가 꽤 모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노조설립 배경에는 최근 삼일회계법인 직원들과 회사가 ‘근로자 대표’ 선출을 두고 겪은 내홍이 있다. 노조가 없는 삼일회계법인은 최대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에 맞춰 유연근무제를 도입하기 위해 근로자 대표를 선출하고 있다. 유연근무제는 노동자가 개인 여건에 따라 근무 시간과 형태를 조절할 수 있는 제도인데, 최대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이 가운데 일이 많이 몰리는 기간의 노동 시간을 늘리고, 다른 기간의 노동 시간을 줄여 평균적으로 법정 노동 시간에 맞추는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사업장에서 쟁점이 되고 있다. 근로기준법 51조·52조를 보면, 탄력적 근로시간제·선택적 근로시간제 등 ‘유연근무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일회계법인의 ‘근로자 대표’ 선출하는 과정에는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달 17일 진행된 근로자 대표 선거는 전체 투표 대상자 2553명 가운데 과반에 미치지 못하는 1275명(49.9%)만 투표에 참여해 부결됐다. 이후 진행된 2차 선거에서도 후보자 4명 가운데 득표수가 많았던 2명을 대상으로 현장 투표를 진행했으나 역시나 과반득표자가 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회사는 재적근로자 과반득표자를 대표로 선출하고, 과반득표자가 없을 경우 상위 2명을 대상으로 결선투표를 진행하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두 차례 선거에도 과반득표자가 나타나지 않자 회사는 두 후보자의 득표율을 합산하면 과반이 넘는다며 두 후보자를 공동대표로 선출하는 ‘꼼수’를 부렸다.

직원들은 1위와 2위 득표자를 공동대표로 선출하겠다는 회사의 결정에 크게 반발했다. 회사가 유연근무제 도입을 밀어붙이기 위해 ‘회사의 입맛에 맞는’ 근로자 대표를 무리하게 선출하려 한다는 것이다. 결국 회사 쪽은 1위 후보자를 대상으로 찬반 투표를 조만간 진행하겠다고 한발 물러난 상태다.

‘근로자 대표’ 선출과정에서 벌어진 회사의 ’꼼수’와 ’무리수’는 직원들이 노조설립을 추진하는 계기가 됐다. 추진위가 직원들에게 배포한 가입신청서를 보면, 회사의 무리한 ‘근로자 대표’ 선출과정이 노조설립의 배경이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추진위는 신청서에서 “이번 노조설립의 도화선은 근로자대표 선거의 부당성과 그들이 우리를 대하는 마음가짐”이라면서 “우리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소통 창구가 없다면 지속해서 부당한 일이 반복될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그간 ’전문직’이라는 포장이 가려져 왔던 회계법인의 ‘고강도’ 업무환경이 노조 결성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삼일회계법인에서 일하는 한 회계사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일이 바쁜 연말·연초가 되면 하루 10시간 이상 근무가 일상이면서 회사가 그에 맞는 정당한 보상을 주지 않는다는 불만이 팽배해있다”며 “최대 주 52시간 근로제가 코앞에 닥치자 형식적인 근로자 대표를 앞세워 인력 확충 없이 현재의 장시간 노동을 유지하고자 한다는 불신이 직원들 사이에서 상당히 크다”고 설명했다.

민주노총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관계자는 “회계사가 고소득 전문직으로 여겨지다 보니 이들의 ‘노동자성’에 대한 인식이 미미했다. 이번 노조설립 추진이 ‘전문직’이라는 포장에 가려진 회계 업계의 고강도 노동실태가 알려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무엇보다 노조가 이른바 ‘전문직’을 포함한 모든 노동자를 위한 것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다”고 짚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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