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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징용피해자 영정 든 일본인들 “소 6마리 마음의 빚 갚고 싶어”

등록 2018-10-31 14:27수정 2018-10-31 23:28

지원모임 만든 나카타·우에다씨
21년째 일본과 한국서 소송 도와
30일 대법서 승소 판결 직접 들어
“살아있었으면 얼마나 기뻐했을지…”
일제 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13년 8개월 만에 피해자들의 승소 판결이 난 30일 오후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회원들과 피해자, 유가족들이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맨 왼쪽에서 신천수씨의 영정을 들고있는 사람이 우에다 게이시씨, 그 옆에 여운택씨의 영정을 든 사람이 나카타 미쓰노부씨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일제 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13년 8개월 만에 피해자들의 승소 판결이 난 30일 오후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회원들과 피해자, 유가족들이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맨 왼쪽에서 신천수씨의 영정을 들고있는 사람이 우에다 게이시씨, 그 옆에 여운택씨의 영정을 든 사람이 나카타 미쓰노부씨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일본인 나카타 미쓰노부(64)씨는 1997년 일본에서 열린 첫 재판에서 고 여운택씨가 한 말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 임금을 받았으면 소 여섯 마리를 샀을 것이고, 그 돈이 있었으면 내 인생은 바뀌었을 겁니다.” 여씨는 일제강점기 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의 일본 현지 공장으로 강제동원됐다.

지난 30일 일본 전범기업 강제노역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을 인정한 한국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 나카타씨와 우에다 게이시(60)씨는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 섰다. 나카타씨는 여씨의 영정을, 우에다씨는 고 신천수씨 영정을 들었다. 여씨와 신씨 두 사람은 이춘식(94)씨와 함께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재판이 늦어지며 먼저 세상을 떠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다. 두 일본인은 이날 눈을 감은 여씨와 신씨를 대신해 대법원 대법정에서 승소 판결을 직접 들었다. 나카타씨는 “두 사람도 살아있었으면 얼마나 기뻐했을까 싶어 정말 아쉬웠다. 그렇지만 이춘식 할아버지께서 살아계셔서 정말 기쁘고 감사하다”고 했다.

대법원 판결에 일본 정부가 강하게 반발하고 일부 우익의 ‘혐한’ 움직임이 이는 상황에서 두 일본인은 왜 징용피해자 영정을 들었을까. 여씨와 신씨는 1997년 일본 오사카지방재판소에 신일본제철로 이름을 바꾼 기업과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과 미지급 임금을 달라는 소송을 냈다. 당시 공무원이었던 나카타·우에다씨는 ‘일본제철 징용공 재판지원 모임’을 만들어 일본뿐 아니라 한국 재판까지 지켜봤다. “주변에 재일한국인이 많아 한국이 친근했어요. 또 당시에는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분위기도 강했고요.”(나카타씨) “특별히 역사에 관심은 없었지만 ‘도와달라’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말에 재판을 지원하게 됐어요. 오랜 시간 재판을 지켜보며 ‘가족’이라고 느끼게 됐고 가족의 일이니까 내 일처럼 지금까지 계속하게 됐죠.”(우에다씨)

강제동원 상처가 남아있던 여씨는 처음에는 두 사람을 믿지 못했다고 한다. “일본에서 재판받을 때 칫솔을 사주겠다고 하니, 여씨가 ‘일본사람에게 돈을 주면 잔돈을 돌려줄지 어떻게 믿느냐’며 거절했어요. 일본에 대한 신뢰라는 게 전혀 없다는 걸 절감했죠.” 우에다씨는 여씨와의 첫 만남을 이렇게 기억했다. 그러나 재판이 거듭되면서 나중에는 여씨가 뱃노래를 불러줄 만큼 친한 사이가 됐다고 한다. 우에다씨 말처럼 ‘가족’이 된 것이다.

2003년 한국 대법원 격인 일본 최고재판소는 여씨와 신씨의 패소를 확정했다. “일본에는 정의가 없다고 생각해 크게 실망했다”던 우에다씨는 나카타씨와 함께 한국에서의 소송을 돕기로 했다. 미지급 임금을 기록한 공탁금 명부를 바탕으로 소송에 참여할 피해자를 찾으러 전국을 다녔다. 그때 이번 대법 판결의 또 다른 원고인 김규수씨를 만났다. “명부를 들고 찾아가니 ‘누구한테 강제동원 된 사실을 들었냐’고 화를 냈어요. 고통스러운 과거였기 때문에 가족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나카타씨) 그런 김씨도 “도망치려다 맞았다. 월급을 못 받은 것보다 열심히 일했는데도 맞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은 걸 잊을 수 없다”고 우에다씨에게 털어놓을 정도로 마음을 열었다. 김씨는 대법원 판결 넉 달 전인 지난 6월 숨졌다.

한국에서의 재판도 1·2심에서 패소했지만 2012년 대법원은 징용 피해자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다시 이 사건을 받아든 대법원은 5년간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최근에서야 정치권력과 사법권력이 이 재판을 두고 협의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우에다씨는 “한국의 헌법 정신이 살아있다고 믿었는데, 그 뒤로 판결이 계속 방치돼 많이 걱정했다. 판결이 늦어진 이유인 사법농단을 밝혀내고 오늘 판결까지 끌어낸 한국 시민들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두 일본인은 신속한 배상을 요구했다. 나카타씨는 “소송을 시작한 네 명 중 한 명만 살아있는 걸 보면 피해자들에 남겨진 시간은 없다. 신일철주금과 일본 정부는 하루라도 빨리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한-일 양국의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에다씨는 “미래를 향해 가자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놓친 건 전쟁과 식민지 피해자들이다. 일본에도 전쟁 피해자가 있고, 한국 정부도 식민지 피해자를 버린 적이 있다. 이번 판결로 강제동원과 위안부 피해자의 권리가 회복돼 새로운 한-일 관계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했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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