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투 작업 중인 타투이스트 김일재씨. 김일재씨 제공
올해 9월 말, 8년 차 타투이스트 김일재(34)씨는 단골손님의 왼쪽 팔에 길게 난 흉터를 발견했다. 흉터는 분명 자해 시도를 한 흔적이었다. 손님이 왜 자해를 했는지는 차마 묻지 못했지만, 김씨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흉터가 깊고 큰 데다 ‘이 사람은 이때 어떤 심정이었던 걸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다. 김씨는 이 손님에게 “단골이니 흉터 위에 무료로 타투를 해주겠다”고 제안했고, 손님은 김씨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손님은 흉터 위에 ‘나는 내가 지킨다’는 의미의 외국어 문구를 타투로 새기고 돌아갔다.
“시술을 받은 손님이 ‘감사하다’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느꼈습니다. 기독교인이자 타투이스트로서 평소 타투로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는데, 이 일을 계기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흉터를 덮어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달 24일 서울의 작업실에서 만난 김씨는 자신을 ‘상처를 덮어주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단골손님의 ‘나는 내가 지킨다’ 타투를 새긴 그날 이후, 다른 손님들의 자해 흉터에도 무료로 타투를 새겨주는 일을 하고 있다. 김씨로부터 무료 타투를 받은 이들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후기를 올리면서, 김씨에게 ‘나도 상처 위에 타투를 받을 수 있냐’고 묻는 문의가 하루 4~5건씩 꾸준히 오고 있다고 했다. 한달 정도만에 30여명이 김씨를 찾아와 흉터 위에 예쁜 타투를 새기고 갔다. “아까 (무료 타투) 한 분 해드렸고요. 이따 두 분 예약이 더 있어요. 오늘은 유료 고객이 없는 날이네요.” 김씨가 웃으며 말했다.
타투이스트 김일재(34)씨가 손목의 흉터에 무료로 새겨준 타투들. 왼쪽이 비행기 창문 너머로 하얀 비행기 날개와 노을 지는 하늘에 별이 반짝이는 모습이 그려진 타투다. 김일재씨 제공
김씨를 찾는 사람들은 흉터 위에 타투도 새기고, 마음의 상처도 털어놓고 간다. 1~2시간의 작업시간 동안 손님들은 잠시나마 세상을 등지려고 했던 이유, 마음의 상처 등을 이야기하고, 김씨는 이를 묵묵히 들어주거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상담을 해주기도 한다.
“손님에게 ‘여행을 좋아하냐’고 물었는데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요새는 국외여행 싸게 다녀오는 방법도 많으니까, 앞으로는 삶의 목표를 여행으로 삼아보는 건 어떻겠냐는 의미에서 이 타투를 새겨줬어요.”
김씨가 비행기 창문 너머로 하얀 비행기 날개와 노을 지는 하늘에 별이 반짝이는 모습이 그려진 타투를 보여주며 말했다. 김씨는 “대부분이 처음 보는 분들인데, 아마 내가 자신의 흉터를 덮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이야기를 털어놓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손님들이 김씨에게 터놓고 말할 수 있는 건 그가 단순히 무료로 타투를 해주는 사람이어서만은 아니다. 김씨 또한 한때 여섯 번이나 세상을 등지려 했던 경험이 있다. 김씨가 보여준 왼쪽 손목에도 자해 흉터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부모님의 이혼 등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는 그는 그래서 “그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한다”고 말했다. 김씨를 찾은 손님들도 대부분 가정폭력 등 가정사로 인해 세상을 등지려 했던 이들이다.
“한 손님은 아버지가 술만 마시면 때리는 사람이었대요. 참다못해 경찰에 신고했는데 경찰이 ‘우리가 관여하기가 어렵다’며 그냥 돌아갔다고 해요. 경찰이 돌아가고 그 손님은 또 맞았죠. 결국 손목을 그었는데 응급실에 실려 가면서 살게 됐다고 해요.” 김씨가 씁쓸하게 말했다.
김씨는 “(이 일을 시작하면서) ‘한국 사회에 상처받은 젊은 사람이 이렇게나 많구나’라는 걸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그에게 무료 시술에 관해 묻는 이는 매일 4~5명쯤 되고, 대부분이 20대에서 30대다. 김씨가 시술한 30여명의 고객도 모두 2030이다. 김씨는 “찾아온 손님들을 보면 대체로 명랑하고 밝은데 속으로는 곪아있었던 것”이라며 “다들 안쓰럽다”고 말했다.
“손님들 얘기를 들어보면 안쓰럽고 안타까워요. 그래도 ‘꼭 살라’고 말해줘요. 나도 한때 괴로워서 죽으려고 했지만 지금은 행복하거든요. 살다 보니 행복한 순간도 온다고, 그러니까 살아볼 가치가 있다고 얘기해줍니다.”
김씨는 앞으로도 무료 타투를 원하는 사람이 있는 한 계속 돈을 받지 않고 작업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람들이) 돈 받고 작업하는 타투이스트들을 안 좋게 볼까 봐 걱정이 된다”며 염려를 나타낸 김씨는 그럼에도,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내도 전적으로 지지해주고 있고,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이 따뜻해질 수 있다면 곧 태어날 아이도 따뜻한 세상에서 살 수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무료 타투를 받은 이들이) 나가서 다른 사람을 도울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왕이면 타투에 대한 안 좋은 인식도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씨가 웃으면서 말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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