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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처벌로 의무이행 강제하는 ‘양심의 자유’ 침해는 안 돼”

등록 2018-11-01 15:31수정 2018-11-01 21:18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병역 이행 견디지 못하는 소수자 포용·이해해야”
대체복무제와 무관, ‘진정한’ 양심적 거부는 무죄
‘진정한 양심’에 따른 것인지는 재판에서 입증해야
대법원 청사 전경.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대법원 청사 전경.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유죄를 확정한 2004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최종영 당시 대법원장) 판결과 무죄로 판단한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 판결의 인식 차이는 14년의 세월 만큼이나 컸다. 2018년 11월 전합 판결은 지난 6월 헌법재판소의 애매한 결정에서도 한발 더 나아갔다.

2004년과 2018년의 대법원 전합 판결은 ‘양심의 자유’에 대한 침해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에서 극명하게 갈렸다. 2004년 대법원은 “국방의 의무는 국가 존립에서 가장 기본적 의무로, 특히 특수한 안보 상황을 고려하면 국방의 의무보다 종교적·양심의 자유가 우선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판결에는 이강국 당시 대법관(이후 헌법재판소장)만 “양심의 자유와 국방 의무가 충돌하면, 국가형벌권보다 양심의 자유가 더 보장돼야 한다”고 반대의견을 냈을 뿐이다.

2018년 대법원은 “양심의 자유는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는 기본조건이자 민주주의 존립의 불가결의 전제로, 그 본질적 내용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전제했다. 우선순위에 대한 판단 기준이 14년 전과 다르다.

대법원은 이어 “우리나라의 경제력과 국방력, 국민의 높은 안보의식 등에 비추어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용한다고 해서 국가안전보장과 국토방위를 달성하는 데 큰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진정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집총과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병역의무의 이행을 강제하고 그 불이행을 처벌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되거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다.

전원합의체 다수의견은 나아가 “대다수의 다른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더라도 사람마다 처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정 때문에 병역의 이행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병역법이 처벌을 면하도록 한 ‘정당한 사유’일 수 있다. 그 신념에 선뜻 동의할 수 없더라도 이제 이들을 관용하고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처벌규정은 합헌이지만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지난 6월 헌재의 애매한 결정과 달리, ‘처벌이 부당해 무죄’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당시 헌재는 ‘대체복무를 허용하지 않은 것은 헌법불합치이지만,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규정 자체는 위헌정족수 미달로 합헌’이라는 결정을 선고하면서, 법정의견을 통해 “대체복무제가 없는 상황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는 (병역법 처벌에서 제외되는) ‘정당한 사유’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은 대체복무제가 없기 때문이니 법원이 무죄 판결로 해결하라는 ‘공 넘기기’다.

이에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는 병역법이 처벌에서 제외한다고 정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 ‘정당한 사유’가 있으면 처벌할 수 없다”고 명시적으로 밝혔다. 대법원은 다만 대체복무제를 이유로 삼은 헌재의 논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정당한 사유’로 인정할 것인지는 대체복무제가 있고 없고 와 논리 필연적인 관계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면 처벌하지 않을 뿐이지, 대체복무제와는 관계없다는 설명이다.

이번 판결은 그런 점에서 석연찮은 면도 있다. 전원합의체 다수의견은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면 (처벌에서 제외되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면서도, 무엇이 ‘진정한 양심’인지는 재판에서 입증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양심적 병역거부의 ‘양심’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것인지”가 재판 대상이 된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자신의 병역거부가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에 따른 것으로 그 양심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것임을 보여주는 소명자료를 제시하고, 검사가 이들 자료의 신빙성을 비판해 배척해 ‘정당한 사유’가 없음을 입증하는 방식”으로 재판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쉽게 판정하기 힘든 ‘양심의 진정성’을 놓고 새로운 논란이 이어질 가능성이 작지 않아 보인다.

여현호 선임기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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