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병역법 위법 관련 선고를 위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열리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1950년 이후 2만명 가까운 처벌 행렬이 멈추게 됐다. 종교 또는 신념을 이유로 입영과 집총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는 무죄라는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왔다. 지난 6월 ‘병역법 처벌 조항은 합헌, 대체복무제 없는 것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애매한 결정에서도 한발 더 나아갔다는 평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 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일 ‘여호와의 증인’ 신도로 2013년 7월 육군 현역병으로 입영하라는 통지를 받은 뒤 입영을 거부해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오승헌(34)씨 상고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무죄 취지로 창원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형사처벌 등 제재를 가해 병역의무 이행을 강제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 등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 병역의무 이행을 일률적으로 강제하고, 이행하지 않으면 형사처벌로 제재하는 것은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이라는 자유민주주의 정신에도 위배된다.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면 병역법에서 처벌의 예외사유로 정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는 것이 다수의견”이라고 밝혔다.
대법관 13명 중 김 대법원장과 김재형, 권순일, 조재연, 박정화, 민유숙, 김선수, 노정희 대법관 등 8명이 다수의견에 참여했다. 이동원 대법관은 국가 안전보장에 우려가 없는 상황을 전제로 다수의견에 함께하는 별개의견을 냈다. 김소영, 조희대, 박상옥, 이기택 대법관은 “진정한 양심의 존재 여부를 심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계 유일 분단국으로서 엄중한 안보상황과 병역의무 형평성을 감안하면 양심적 병역거부는 인정될 수 없다”며 유죄를 주장하는 반대의견을 냈다.
■ 양심적 병역거부 판단 기준 이번 무죄 판결(대법관 9대4)은 2004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유죄 판결(대법관 11대1)을 14년만에 뒤집은 것이다. 대법원은 종교 또는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를 판별하는 기준을 새롭게 제시했다.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에서 ‘양심’은 그 신념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하여야 한다”고 정의한 뒤, “신념이 깊다는 것은 그의 모든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으로, 삶의 일부가 아닌 전부가 그 신념의 영향력 아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병역을 기피하는 용도로만 종교를 내세우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어 “병역거부자가 깊고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어도 상황에 따라 다른 행동을 한다면 진실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대법원은 이에 비춰 오씨가 △13살 때부터 신앙생활 시작 △2003년 최초 입영통지 받은 이래 현재까지 신앙을 이유로 입영거부 △아버지와 동생도 같은 이유로 옥살이 △부양해야 할 배우자, 어린 딸, 갓 태어난 아들이 있는 데도 형사처벌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 점을 “양심과 신념의 진실성”을 인정한 근거로 들었다.
대법원은 이외에도 ‘양심적 병역거부 교리 남용’을 막기 위한 기준도 제시했다. 해당 종교 교리에 ‘양심적 병역거부’가 담겼더라도 △다른 신도들도 병역을 거부하는지 △교단에서 신도로 인정하는지 △교리 내용 전체를 철저히 따르는지와 함께 △종교를 신봉하게 된 동기 △개종했다면 그 이유 △신앙 기간과 실제 종교활동 등을 주요한 판단 요소로 들었다.
석연찮은 면도 있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의 ‘양심’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것인지”가 재판 대상이 된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자신의 병역거부가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에 따른 것으로 그 양심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것임을 보여주는 소명자료를 제시하고, 검사가 이들 자료의 신빙성을 비판해 배척해 ‘정당한 사유’가 없음을 입증하는 방식”으로 재판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쉽게 판정하기 힘든 ‘양심의 진정성’을 놓고 새로운 논란이 이어질 가능성이 작지 않아 보인다. 10월 말 현재 법원에는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사건이 227건 계류돼 있다.
■ 대체복무제 입법 서둘러야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처벌 규정은 합헌이지만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지난 6월 헌재의 애매한 결정과 달리, ‘처벌이 부당해 무죄’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당시 헌재는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은 대체복무제가 없기 때문이니 법원이 무죄 판결로 해결하라며 공을 넘겼다. 그러나 대법원은 대체복무제를 이유로 삼은 헌재의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정당한 사유’로 인정할 것인지는 대체복무제가 있고 없고와 관계 없다”라고 밝혔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면 처벌하지 않을 뿐이지, 대체복무제와는 관계없다는 설명이다.
헌재 결정에 이은 대법원의 무죄 선고로 내년 12월31일이 법 개정 시한인 대체복무제 입법이 한층 시급해졌다. 그러나 조만간 발표될 정부의 대체복무제 방안은 육군 현역병 복무기간의 두 배인 36개월 동안 교도소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한다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어, 헌재와 대법원 판단 취지와 달리 사실상 ‘징벌’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여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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