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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물·전기 끊긴 노량진 수산시장…시장 곳곳에 죽은 물고기

등록 2018-11-05 18:11수정 2018-11-05 19:24

5일 수협 “새 시장으로 옮겨라” 일방적 단전·단수
바가지로 산소 공급…상인들 촛불 켜고 영업
상인들 “새 시장 좁고 임대료 비싸” 반발
수협 “보상금 더 받으려는 상인들의 꼼수” 비판
5일 아침 9시께부터 서울 동작구 옛 노량진수산시장에 단전·단수 조치가 취해졌다. 이날 단전으로 상인들은 촛불을 켠 채로 영업을 해야 했다.
5일 아침 9시께부터 서울 동작구 옛 노량진수산시장에 단전·단수 조치가 취해졌다. 이날 단전으로 상인들은 촛불을 켠 채로 영업을 해야 했다.
5일 아침 9시께 서울 동작구 옛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은 바가지를 이용해 수조 안의 물을 펐다 붓기를 반복했다. 전기가 끊겨 수조에 산소가 자동공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바가지를 이용해 산소를 공급하던 상인 김학준(67)씨는 “단전·단수는 처음이다. 오전 중에는 다시 들어오길 바란다”며 한숨을 쉬었다. 시장은 캄캄했다. 목동에서 조기를 사기 위해 왔다는 한 손님은 “어두워서 생선이 보이질 않는다”고 했다. 상인들은 촛불을 켜놓고 생선을 손질했다.

■아침 9시께 수도와 전기 끊겨

수협은 이날 단전·단수 조치를 취하며 노량진수산시장의 수도와 전기를 차단했다. 노량진수산시장의 현대화를 추진하고 있는 수협은 “대법원 판결 이후 올해 4월부터 지난달까지 4차례 명도 집행을 시도했으나 상인들이 무력으로 막아 부득이 단전·단수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를 둘러싼 갈등은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4년 대통령 직속 기구인 농어업·농어촌특별대책위원회는 노후화된 시장의 안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책사업으로 ‘노량진 수산시장 현대화 사업’에 착수했다. 이에 수협은 기존 냉동 창고를 헐고 지난 2015년 10월 지하 2층, 지상 6층 규모의 현대식 건물을 완공했다. 새 노량진 수산시장은 2016년 3월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하지만 상인들 대다수는 임대료와 점포면적을 문제삼아 새 시장으로 입주를 거부했다. 1973년부터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장사를 해왔다는 정말순(83)씨는 “새로 만든 시장은 장사를 할 수 없는 구조다. 통로가 좁아 물건 진열과 작업이 어렵다”며 “장사만 할 수 있게 해놨어도 들어갔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수협이 기존 약속과 달리 점포 면적은 줄이고 임대료는 높였다”며 “본인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는데 왜 우리 탓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상인들이 옛 시장에 계속 남아있자 수협은 2016년 3월 점유이전금지 가처분 신청을 시작으로 올해까지 약 3년간 명도소송을 이어왔다. 대법원은 지난 8월17일 원고인 수협 측의 승소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후 4차례 명도 집행 시도가 있었으나 상인들의 잇단 반발로 모두 무산됐고 이날 처음으로 단전·단수라는 조치가 취해진 것이다.

노량진수산시장의 한 상인이 죽은 광어와 방어 등을 통에 담아뒀다. 이날 단전으로 수조에 산소공급이 되지 않아, 시장 곳곳에는 죽은 물고기들이 널려있었다.
노량진수산시장의 한 상인이 죽은 광어와 방어 등을 통에 담아뒀다. 이날 단전으로 수조에 산소공급이 되지 않아, 시장 곳곳에는 죽은 물고기들이 널려있었다.

“보상금 얻기 위한 것…” vs “생존권 쟁취”

상인들은 단전·단수는 수산시장 상인들에겐 살인행위라며 반발했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30년 가까이 장사를 해왔다는 윤춘자(77)씨는 “수산시장에서 전기를 끊는 건 살인행위”라며 “새우들은 1시간, 1시간마다 달라지는데 전기를 끊어 이렇게 만들어 놨다”며 울먹였다. 시장 곳곳에선 산소가 없어 죽어버린 물고기를 건지는 상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윤씨는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며 “여기서 벌어서 애들 가르친 삶의 터전”이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윤헌주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비상대책총연합회 공동위원장도 “단전·단수 경고가 들어오긴 했으나 형식적인 수준”이었다며 “이건 나가라고 압박하는 일 밖에는 안 된다”고 밝혔다.

수협은 법에 따른 절차를 집행한 것이라 입장이다. 지난달 30일 단전·단수를 통보했고 공고문과 내용증명을 통해 4일까지 이전하지 않으면 이를 진행하겠다고 고지했다는 설명이다. 수협 쪽 관계자는 “수산물 부패방지를 위해 미리 냉동 창고 등을 이용할 수 있다고 안내도 했다”고 덧붙였다.

하루 종일 옛 노량진수산시장 근처에서는 수협과 상인들 간의 갈등이 계속됐다. 상인들은 단전·단수에 항의하기 위해 주차장 입구 쪽으로 몰려들었고, 주차장 입구에서 상인들과 수협직원들이 대치했다. 수협은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불법을 멈추라”고 했고 상인 측은 방송차로 민중가요를 크게 틀었다.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상인들의 목소리와 “불순한 외부세력이 선량한 상인들을 선동했다”는 수협의 목소리가 계속 맞섰다..

수협의 단전·단수에 항의하는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이 주차장 입구에 누워 농성을 벌이고 있다.
수협의 단전·단수에 항의하는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이 주차장 입구에 누워 농성을 벌이고 있다.
수협은 면적과 임대료가 불합리하다는 상인들의 주장에 대해 “상인들 스스로 결정한 사항”이라며 보상금을 더 받고자 하는 꼼수라고 비판했다. 수협은 면적 문제와 관련해 “2.5평으로 면적을 확대한 점포 제공방안을 제시했지만 상인들이 자체 투표를 통해 기존과 동일한 1.5평 면적의 점포 배치를 결정했고 이에 따라 공사가 진행됐다”며 “임대료 역시 상인들이 합의를 통해 결정했다”고 밝혔다.

수협은 상인들에게 최후통첩을 한 상태다. 수협은 “상인들이 오는 9일까지 이전하지 않으면 새 시장에서 함께 장사할 뜻이 없다는 것으로 보고 붕괴 우려가 있는 위험지역을 우선 폐쇄, 강제 퇴거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글·사진 이준희 이정하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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