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6일 국회 앞에서 농성 중인 형제복지원 생존자들을 만났다. 이준희 기자
“더 이상 분노로 살지 않게끔 해달라”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한종선(42)씨는 서울 영등포구 국회 정문 앞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농성장을 찾은 최영애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위원장에게 호소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진상규명을 위한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농성이 딱 1년이 되는 11월 7일을 하루 앞두고 최 위원장이 6일 농성장을 방문했다.
오전 9시께 최 위원장이 방문한 비좁은 농성장 앞에는 ‘살아남은 아이’라는 문구가 걸려 있었다. 각각 14살과 9살에 경찰에 의해 형제복지원에 끌려간 최승우(49)씨와 한씨는 “우리가 왜 경찰관에게 잡혀가야했는지 알고 싶다”며 인권위가 세상에 목소리를 내달라고 요구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박인근 당시 형제복지원장이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무연고 장애인, 고아 등 어려운 환경의 시민을 불법 감금하고 강제노역, 구타, 학대한 사건이다. 공식 확인된 피해자만 3천명이 넘고, 이 가운데 513명이 사망했다. 검찰은 1987년 박인근 당시 원장을 불법 감금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지만 대법원에서는 “정부 훈령에 따른 부랑자 수용이었다”며 특수감금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생존자들은 진상 규명 등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2017년 12월 인권위는 “형제복지원 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 등 구제를 위해 ‘내무부 훈련 등에 의한 형제복지원 피해사건 진상규명 법률안’(형제복지원 특별법안)의 조속한 법률 제정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 2016년 진선미 의원 주도로 특별법이 발의됐지만 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피해생존자들은 “국회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인권위원회에서 발언 한 마디가 나오지 않았다”며 “위원장님이 새로 부임하셨기 문에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나 강력함을 보여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 인권위원장은 “인권위가 존재하는 일차적 이유는 국가에 의해 이뤄지는 인권유린을 다루는 데 있다”며 “최선을 다 하겠다”고 답했다.
대화가 끝날 무렵 한씨는 ‘분노’로 살지 않게끔 해달라고 말했다. 한씨는 “국가폭력 피해자분들이 농성장을 찾아오셔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분노로 살아가고 있다”며 “더 이상 분노로 살지 않게끔 해달라”고 밝혔다. 농성자들과 대화를 마친 최 위원장은 농성자들과 포옹하고 국정감사를 위해 국회로 들어갔다.
이준희 임재우 기자
givenhapp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