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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한 사건에 ‘사형→무죄→유죄→무죄’…사형제 폐지 주장 이유”

등록 2018-11-07 05:00

사형제, 폐지할 때 됐다 ③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 인터뷰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
재판부 따라 유죄-무죄 널뛰기
사형선고 상당수는 저소득층
미국의 경우는 대부분 흑인
강력범죄 사형제와 무관
국가, 피해자 지원제도 확대해야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며 사형제 폐지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며 사형제 폐지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을 보면 어떤 변론을 받느냐에 따라 사형과 무죄가 왔다 갔다 하는 걸 잘 알 수가 있어요. 만약 항소심 변호사가 달랐으면 결과도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5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서 만난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형제와 관련한 인터뷰를 하던 도중 불쑥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 이야기를 꺼냈다.

1995년 6월12일 오전 9시20분, 서울 은평구 불광동의 한 아파트에서는 치과의사인 어머니와 한 살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남편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체포했다. 마땅한 물증은 없었고, 남편도 범행을 부인했다. 하지만 그는 1996년 2월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변호사가 바뀐 1996년 9월 항소심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1998년 11월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남편에게 죄가 있다고 보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2001년 2월 서울고등법원은 남편에게 다시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결은 2003년 2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사람들은 의문을 멈추지 않았다. ‘남편은 무죄인가 유죄인가.’ 두 번의 유죄와 세 번의 무죄. ‘사람’의 판단은 엇갈렸다. 진실은 ‘신’만 알 수 있다. 사람들의 의문에서 딱 한 걸음만 더 나가면 새로운 질문이 나온다. ‘신만이 알 수 있는 일에 사형을 선고하는 것이 옳은가.’ 그리고 ‘그 판결은 항상 공평했나.’

인간이 하는 일에는 오류가 있다. 그래서 근대 사회는 오류가 드러날 때 바로잡을 수 있는 절차와 제도를 마련해뒀다. 하지만 사형만큼은 다르다. 사회가 오류를 바로잡을 기회를 빼앗는다. 게다가 변호사의 변론 등 피고인이 가지거나 가지지 않은 것에 따라 법원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면, 공평해 보이지도 않는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사형 선고자 상당수가 저소득층이에요. 미국에서는 흑인이고요.”

시절에 따라 ‘죽일 놈’은 달라지기도 한다. “예전에는 존속살해를 무겁게 처벌했어요. ‘효’라는 윤리 문제가 법에 영향을 미친 거죠. 그때는 직계존속이 가정 폭력 등 어떤 잘못을 했다고 해도, 그를 해하는 것을 ‘천륜을 어긴 것’이라고 봤어요. 하지만 불과 20년이 지난 지금은 다르잖아요. 죄질에 따라 다르겠지만 과거 존속살해로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 중 상당수는 지금 재판을 받으면 무기징역도 안 나올 거예요. 범죄자가 나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사형과 무기징역의 차이는 정말 크잖아요. 그런데 불과 20년이 그 결과를 뒤집을 수 있다면, 그때 내린 결론이 절대적으로 옳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검찰 출신인 그는 과거 경험도 털어놨다. 금 의원이 검사 시절 재판을 전담하는 공판검사로 일할 때였다. “수사검사가 두 사건의 재판을 맡겼는데 하나는 무기징역을, 하나는 사형을 구형해달라고 했어요. 첫 번째 사건은 토막살인 사건이었어요. 두 번째 사건은 아동을 성폭행한 뒤 살인하려다 미수로 그친 사람이 출소한 뒤에 다시 아동 성폭행을 하고 살인한 사건이었어요. 굳이 해야 한다면 어떤 사건에 사형을 구형해야 할까요.”

당시 수사검사는 토막살인 사건에 사형을 구형하고, 아동 성폭행 사건에 무기징역을 구형해달라고 금 의원에게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금 의원은 아동 성폭행 사건이 재범인 데다 죄질이 더 나쁘다고 판단했다. 결국 논의 끝에 두 사건 모두 무기징역을 구형하기로 했다. 금 의원은 이처럼 사형과 무기징역을 구형하고 선고하는 일은 우연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그 우연에 누군가의 생명이 걸려있다는 점이다.

금 의원은 20대 국회의원 가운데 가장 강력하게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의원 중 하나다. 그가 사형제 폐지를 말하는 이유는 ‘사형수가 불쌍해서’가 아니다. “최근 세 명의 사형수를 직접 면회를 했어요.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미리 판결문 등을 읽어보고 만나면, 사실 ‘이런 사람을 교화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검사는 범죄에 대해서 적개심을 가지는 훈련을 받아요. 저 역시 당연히 흉악한 범죄를 볼 때마다 화를 참을 수 없죠. 흉악범의 사형을 집행하자는 시민들의 말이 충분히 이해됩니다.” 정치인으로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금 의원은 사적인 감정과 실리를 버리면서 틈날 때마다 사형제 폐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게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형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쪽은 범죄 억제력 유지, 피해자 및 유족의 감정 등을 그 근거로 든다. 하지만 금 의원은 사형 이외에 다른 길도 있다고 말한다. “사형을 폐지한 국가에서 범죄가 늘었다는 증거는 없어요. 강력범죄는 사형제와 무관하게 계속 발생하죠. 오히려 범죄 예방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범죄율을 줄이는 길이죠.”

사형제 폐지 과정에서 국가의 피해자 지원 제도도 크게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는 것이 정부의 가장 기본적인 업무입니다. 강력범죄 피해자들에게는 국가가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죠. 지금보다 더 강력한 피해자 지원 방안이 적극적으로 검토되어야 합니다.”

사형제 폐지 법안은 지금까지 모두 7번 국회에서 발의됐다. 2015년 유인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에는 172명의 국회의원이 참여했다. 하지만 본회의에서 표결조차 해보지 못했다. “사형제 폐지는 양쪽의 소신이 모두 무척 강해요. 다른 법안을 172명이 공동발의했다면 무조건 통과되는 거죠. 하지만 사형제 폐지 법안은 그렇지 않아요. 172명이 사형제 폐지 법안을 발의했다면, 강력한 사형제 폐지 반대론자들이 120여명 있다는 의미에요. 여론도 비슷해요. 다만 최근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대체 형벌로 하면 폐지해도 좋다는 의견이 과반이 넘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는데, 굉장히 좋은 신호라고 생각해요.”

국가인권위원회는 ‘세계 사형폐지의 날’인 10월10일 일반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사형제 폐지와 관련한 국민인식조사(여론조사)를 했다. 종신제 등 사형을 대체할 형벌이 마련된다면 사형제도 폐지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66.9%로 전체 응답자의 3분의 2가 넘었다.

사형제의 대체 형벌로는 현행 무기징역, 가석방 없는 종신형, 가석방이 가능한 종신형 등이 논의되고 있다. 여론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에 가장 우호적이지만, 한 사람을 평생 가둬놓는 것 역시 헌법이 보장한 신체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기 일이기에 위헌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금 의원 역시 그런 의견을 잘 알지만, 사형제 폐지의 언덕을 넘기 위해서는 여론의 거부감이 가장 적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라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판사였던 금 의원의 아버지는 1997년 마지막 사형 집행을 참관한 뒤 사흘 동안 수저를 들지 못했다고 했다. 검사 시절 그의 선배 검사들은 사형 집행을 참관하러 가서 순서대로 한 사람씩 집행하는 사이사이에 술을 들이켰다고 한다. 괴로움을 달래기 위해서다. 사형 집행을 지켜본 많은 이들은 그렇게 사형 폐지론자가 된다.

‘누가 이들의 생명을 앗아갈 근거를 가지고 있나.’ 금 의원은 아직 이 질문에 마땅한 답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사형제 폐지를 말하고 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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