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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선고기일 잡히는 ‘강제동원’ 하급심… ‘소멸시효’ 판단 어떻게

등록 2018-11-11 14:34수정 2018-11-11 21:57

지난달 30일 대법원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이 1억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온 뒤 계류돼있던 강제동원 하급심 재판이 재개되고 있다. 오는 23일에만 후지코시강재·신일철주금 등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 3건의 변론기일이 서울고법에서 잇따라 열린다. 쟁점은 ‘소멸시효’다. 일부 재판부는 소멸시효 판단을 명목으로 ‘하급심 선고를 연기해야 한다’는 전범기업 쪽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속속 선고기일을 잡고 있다. 소멸시효에 대한 하급심 재판부 판단이 주목된다.

■ 2005년·2012년·2018년… 소멸시효 기산점은 언제?

민법상 피해자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안 날로부터 3년 안에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으면 그 권리의 시효가 소멸된다고 본다. 강제동원 피해자의 경우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안 날을 언제로 보는지, 즉 소멸시효 기산점에 대한 해석이 엇갈린다. 2012년 5월24일 원고 승소 취지로 판결해 서울고법으로 사건을 돌려보낸 대법원 판단을 소멸시효 기산점으로 잡으면 2015년 5월 소멸시효가 종료된다. 2005년 8월 한·일 협정 관련 민관공동위원회 발표를 기점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도 있는데, 이 경우 시효는 2008년 8월에 종료된다.

그러나 2012년이나 2005년은 소멸시효 기산점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온다. 2005년 이후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소송을 냈지만 기각된 바 있고 2012년 대법원 판결도 확정판결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30일 대법원 확정판결을 소멸시효 기산점으로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이유다. 강제동원 피해자를 대리하는 김세은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는 “30일 대법원 확정판결에 따라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비로소 손해배상 청구권이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인해 소멸되지 않았음을 알게 됐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 경우 소멸시효는 2021년 10월30일까지다. 서울고법·서울중앙지법 등 하급심에 계류된 12건의 재판에서 손해배상 청구 권리를 넉넉히 인정받을 수 있다. 강제동원 피해자의 추가 소송도 가능해진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13년8개월만에 피해자들의 승소 판결이 난 30일 오후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회원들과 피해자들이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94)씨가 소감을 말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13년8개월만에 피해자들의 승소 판결이 난 30일 오후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회원들과 피해자들이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94)씨가 소감을 말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 “국가에 의한 반인륜적 범죄에 소멸시효 두지 말아야”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 권리 행사에 소멸시효를 두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민법상 신의성실의 원칙(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를 좇아 성실히 해야 한다)에 따라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에 시효를 따지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이상희 변호사는 “반인륜적인,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에 소멸시효를 적용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8월 광주지방법원은 근로정신대 피해자의 소송에서 원고 승소 취지 판결을 내리면서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미쓰비시중공업을 질책한 바 있다. 광주지방법원 민사1단독 김현정 부장판사는 “소송을 제기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원고들에게는 객관적으로 권리를 사실상 행사할 수 없는 장애 사유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어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책임을 부정하는 피고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해 손해배상책무의 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법률관계의 불명확성에 대처하기 위해 도입된 소멸시효 제도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

근로정신대 피해자의 소송을 대리해온 이상갑 변호사는 “국제법적으로 국가의 반인도적 범죄 행위의 경우 소멸시효를 적용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 일반적이다. 강제동원과 같은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에 소멸시효에 대한 일반 논리를 적용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2005년 12월 유엔총회가 채택한 지침(국제인권법의 중대한 위반과 국제인도법의 심각한 위반의 피해자를 위한 구제조치와 손해배상에 관한 기본 원칙과 지침)은 “국제법상 범죄를 구성하는 국제인권법의 중대한 위반과 국제인도법의 심각한 위반에는 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 전범기업 “대법 판결 때까지 선고 미뤄달라” 주장했지만…

하급심에 계류돼있던 재판들이 재개되면서 선고공판 또한 줄줄이 예정됐다. 일부 일본기업은 하급심 재판부에서 소멸시효를 판단하지 말고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까지 기다리자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2부(재판장 김한성) 심리로 일본 전범 기업 신일철주금 강제동원 피해자의 민사소송 항소심의 변론기일이 열렸다. 올해 1월 선고기일이 잡혔다 미뤄진 지 10개월 만이다. 신일철주금쪽 변호인은 ‘소멸시효’ 카드를 꺼내 들었다. 지난달 30일 대법원의 강제동원 상고심이 소멸시효에 대해 뚜렷한 판단을 내놓지 않았으니, 대법원이 또 다른 강제동원 재판에서 소멸시효를 판단할 때까지 재판을 미뤄달라는 취지다.

현재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씨 등 5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계류돼있다. 신일철주금쪽은 사건이 2심이 시작된 지 2년여만인 7일 준비서면을 처음 재판부에 제출했다. 준비서면에는 ‘미쓰비시중공업 사건 관련해 대법원이 피고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을 따져보겠다고 한다’,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위 쟁점에 대한 판단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는 주장이 담겼다. 이에 강제동원 피해자쪽 김세은 변호사는 “피고는 원심과 동일한 주장을 하고 있다. 항소가 제기된 지도 2년이 지난 만큼 대법원 판결을 기다릴 게 아니라 변론을 종결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신일철주금쪽 주장대로라면 고령의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대법원 판단까지 또 한 번 기한없이 기다려야 한다.

재판부는 신일철주금쪽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이 언제 선고될지 모르겠다. 저희 재판부에서 검토해서 선고하겠다”며 다가오는 29일 오후2시 선고공판을 잡았다. 미쓰비시중공업 또한 광주지법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원고만 다를 뿐 내용은 같은 사건이 대법원에 계류돼있다. 그 선고 결과를 보고 판단해달라” 요구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제 송달로 시간이 지연돼 1심 판결 이후 1년 이상 지났다”며 선고기일은 12월 5일이다. 미쓰비시를 상대로 한 또 다른 소송도 14일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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