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벌어진 서울 종로구 관수동 국일고시원 화재사고의 생존자 등이 11일 오전 사고현장을 찾아 짐을 챙기고 있다. 장예지 기자 jpen@hani.co.kr
“아이고, 당신 살았구나!”, “어떻게 대피했어?”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관수동 국일고시원 화재사고 현장에서 만난 거주자들은 서로를 보며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사고 생존자들과 참사 당일 방을 비운 덕에 사고를 피한 이들은 이날 짐을 찾기 위해 사고현장을 방문했다. 서로를 향해 ‘어떻게 대피했냐’, ‘지금은 어디에 머물고 있냐’ 등을 묻던 이들은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화재사고가 트라우마로 남을 것 같다”며 걱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사고 당일 3층에 있었던 생존자 ㄱ씨는 방에서 불에 타지 않은 옷가지 몇 점을 찾았다. ㄱ씨는 ‘창문 있는 방’에 살았던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ㄱ씨는 창문 밖으로 상체를 빼고 있어 구조될 수 있었지만, ㄱ씨의 옆방에 사는 거주자는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ㄱ씨는 “화재 당시 옆방에 사는 70대 노인의 방문을 두드렸지만, 창문을 열지 못해 돌아가신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9일 벌어진 서울 종로구 관수동 국일고시원 화재사고의 생존자 등이 11일 오전 사고현장을 찾아 짐을 챙기고 있다. 장예지 기자 jpen@hani.co.kr
3층에 살았던 이아무개씨도 짐을 찾으러 올라갔다 온 뒤 “잿더미밖에 안 남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씨는 사고 당일 운 좋게 큰 변을 당하진 않았지만, 연기를 많이 마셔 사고 후 이틀이 지난 지금까지도 숨쉬기가 불편하다고 했다. 이씨는 자신의 방에서 온전한 물건을 좀처럼 찾지 못하고 1만2000원이 든 교통카드만을 들고 내려왔다. 또다른 거주자 ㅈ씨는 “(사고 당시) 급히 계단으로 대피해 살았다”며 4년 동안 살았던 이곳에서 컴퓨터와 유에스비(USB), 지갑과 불에 탄 커피믹스를 가지고 내려왔다. 반면 2층에 입주한 한 생존자는 불이 2층까지 번지지 않은 덕분에 비교적 온전한 이불, 옷가지 등을 가지고 내려올 수 있었다. 여행용 가방과 배낭에 짐을 한가득 싣고 외투와 모자도 여러 겹씩 입은 그는 “일 나가려고 하는데 불이 나 바로 뛰어나올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사고현장에 삼삼오오 모인 국일고시원 생존자들은 “사고로 트라우마가 생길 것 같다”며 불안함을 털어놓기도 했다. 한 생존자는 “덮지도 않은 시신이 눈앞에 있는데 스트레스가 엄청 쌓였다”며 “병원으로 이송된 뒤 정신과 선생님을 만나고 싶다고 했는데 ‘그런 시설은 없다’고 해 그냥 나와서 깡소주를 2병 마셨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생존자도 “사고 뒤 사우나를 갔는데 또 불이 날까 봐 몇 번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다. (불이 나면) 주차장으로 가야 안전할까, 계단으로 가야 안전할까 (생각했다)”고도 했다.
9일 벌어진 서울 종로구 관수동 국일고시원 화재사고의 생존자 등이 11일 오전 사고현장을 찾아 짐을 챙기고 있다. 장예지 기자 jpen@hani.co.kr
한편 이날 사고 희생자의 첫 발인식도 엄수됐다. 이날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6가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치러진 조아무개(35)씨의 발인식에서 친인척과 조씨의 회사 동료 등 30여명이 조씨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8년 전 지방에서 상경해 줄곧 고시원에서 살았다는 조씨는 일용직 등을 전전하다 5∼6년 전쯤 우체국에서 비정규직 일자리를 얻었다고 한다. 조씨의 친척은 “월급을 200만원도 안 받는 거로 아는데, 그 돈의 반을 집에 보낼 정도로 주위 사람한테 기댈 줄 모르고 책임감이 강했다”며 “비상벨이나 스프링클러만 있어도 살았을 것 같다. 서민들만 죽는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화마로 세 아들 중 큰아들을 떠나보내게 된 아버지 조씨는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사고 당일 눈물을 쏟았던 조씨는 이날 눈물도 마른 듯했다. 눈시울이 붉어진 조씨는 “어렸을 때부터 키우던 게 쭉 생각난다”며 “(내가) 대신 죽었으면 싶다. 복장이 터지는 거 같다”고 말했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통곡하던 조씨의 어머니는 양쪽에서 부축을 받으며 운구차 앞에서 큰아들의 이름을 불렀지만, 운구차는 말이 없었다. 조씨의 두 동생도 형의 관이 운구차에 실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눈물을 쏟았다. 특히 영정사진을 들고 있던 조씨의 막냇동생은 형이 누운 관이 영안실에서 운구차로 옮겨지는 내내 눈물을 쏟아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전날 화재현장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한국전기안전공사 등과 현장 합동 감식을 벌인 경찰은 “지금까지 수집한 증거물과 관련자들의 진술 등을 분석하고 있다”며 “감식 결과는 최대 2~3주 뒤 나올 예정”이라고 밝혔다.
장예지 전광준 신민정 기자
jp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