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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방탄소년단의 티셔츠는 과연 애국심의 상징일까?

등록 2018-11-12 15:13수정 2018-11-12 22:20

방탄소년단 티셔츠 논란이 ‘혐한’과 ‘극일’ 넘어서야 하는 이유
한국인 원폭피해자 “원폭 사진은 광복의 상징 아니다”
‘원폭으로 인해 광복 프레임’ 갇히면 핵무기 비윤리성 둔감해져
방탄소년단 멤버 지민이 입어 논란이 되고 있는 티셔츠. 티셔츠에는 ‘애국심(PATRIOTISM)’, ‘우리 역사(OURHISTORY)’, ‘해방(LIBERATION)’, ‘코리아(KOREA)’ 등의 문구가 영문으로 새겨져 있고, 원자폭탄이 터지는 사진, 광복을 맞아 만세를 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함께 배치되어 있다. SNS 갈무리.
방탄소년단 멤버 지민이 입어 논란이 되고 있는 티셔츠. 티셔츠에는 ‘애국심(PATRIOTISM)’, ‘우리 역사(OURHISTORY)’, ‘해방(LIBERATION)’, ‘코리아(KOREA)’ 등의 문구가 영문으로 새겨져 있고, 원자폭탄이 터지는 사진, 광복을 맞아 만세를 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함께 배치되어 있다. SNS 갈무리.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 멤버가 원자폭탄이 터지는 사진이 들어간 티셔츠를 입은 적이 있다는 이유로 일본 방송 출연이 취소된 일을 두고 파문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 내 극우의 ‘혐한’ 정서와 한국 내 일각의 ‘극일’ 정서가 맞부딪히고 있는 가운데, 원자폭탄이라는 인류의 비극이 ‘혐한’과 ‘극일’의 대결에서 소재가 되어선 안 된다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문제의 티셔츠는 한 국내 브랜드가 광복절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옷으로, 뒷면에 ‘애국심(PATRIOTISM)’, ‘우리 역사(OURHISTORY)’, ‘해방(LIBERATION)’, ‘코리아(KOREA)’ 등의 문구가 영문으로 새겨져 있고, 원자폭탄이 터지는 사진, 광복을 맞아 만세를 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나란히 그려져 있다. 지난해 촬영된 유튜브 다큐멘터리 ‘번 더 스테이지’에서 방탄소년단의 멤버 지민이 이 티셔츠를 입은 모습이 2초가량 노출됐다.

지난해 입은 티셔츠가 새삼 논란이 된 건 지난달 한 일본 매체가 지민의 티셔츠와 다른 멤버 RM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광복절 트위터를 묶어 “반일 활동”이라고 비난한 기사가 화제가 됐기 때문이다. 일본의 넷우익들이 이 기사를 퍼 나르며 방탄소년단을 비판했고, 일본의 TV아사히는 지난 8일 “방송사는 소속 레코드사에 그 착용 의도를 묻는 등 협의를 진행했지만 종합적인 판단 결과, 이번 출연을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9일로 예정됐던 방탄소년단의 ‘뮤직 스테이션’ 출연 취소를 알렸다.

반향은 즉각적이었다. 국내의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TV아사히의 방송출연 취소가 ‘정치적인 잣대로 문화 교류를 막는 일’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일본 안에서도 방송출연 취소가 “촌스러운 상황”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음악 전문기자 우노 고레마사는 (출연 취소까지 한) 일본 주류 문화의 촌스러운 상황을 바꿔주세요”라는 트위터를 올렸고, 독립 언론인 쓰다 다이스케는 “정치와 매스컴 반응이 한가지(방탄소년단 비판)뿐인 점은 무섭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 BTS 논란 일본 여론 “원폭 티셔츠 안돼” “출연정지 촌스러워”)

이번 방송출연 취소가 2015년 박근혜 정부 때 맺은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설립된 일본군 위안부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하려는 한국 정부의 움직임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배상해야 한다는 한국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두고 벌어진 ‘정치적 제스처’라는 분석도 나온다. 당장 혐한의 구심적 역할을 해온 일본의 넷우익(극우 성향 누리꾼) 단체 ‘재특회’(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모임)는 13일 방탄소년단의 공연이 열리는 도쿄돔 앞에서 시위를 열 계획을 세웠다.

■ 한국인 원폭피해자 “원폭 사진은 광복의 상징이 아니다”

하지만 논란이 이어지면서 TV아사히의 방송출연 취소 조처, 일본 극우단체인 재특회의 움직임에 대한 비판과 별개로 광복을 기리는 상징으로 인류의 비극인 ‘원폭 사진’을 쓰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943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태어나 피폭 피해를 본 1세대 한국인 원폭피해자 심진태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은 <한겨레>와의 전화 통화에서 “원폭 사진은 광복의 상징으로 적절치 않다”며 “원자폭탄 투하를 다룰 때는 당시의 실제 참상, 74년 동안 이어진 피폭자들의 고통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한국은 원폭피해자 2400여명이 여전히 생존해있는 나라다. 어떻게 원폭이 ‘통쾌’한 일일 수 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일본 방사선영향연구소는 원자폭탄이 터진 뒤 2개월에서 4개월 사이 사망한 피폭자를 히로시마 9만~16만6000명, 나가사키 6만~8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아울러 한국원폭피해자협회의 설명과 일본 내무성 정보국 자료 등을 종합하면,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두 차례 투하된 원자폭탄에 의해 피폭된 70만명의 피해자 가운데 조선인은 7만명가량으로 추정된다. 조선인 피폭자는 4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3만여명만 생존했으며, 이 가운데 2만3000여명이 한반도로 돌아왔다. 2018년 기준으로 대한적십자사에 등록된 국내 원폭피해자는 2344명이고, 평균 연령은 83살이다.

원폭 피해를 본 지 7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은 지난해에 들어서야 공식적으로 법적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해부터 시행 중인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은 원폭피해자 실태조사·의료지원 등을 법제화한 한국 최초의 원폭피해자 공적 지원체계이다. 그나마 원폭 피해가 대물림되었다는 논란이 있는 2세대, 3세대 피해자들에 대한 실태조사나 의료지원 방안 등은 이 법에 담기지 않았다.

■ 한국은 원폭피해 당사국, ‘광복 프레임’에 갇히지 말아야

이 때문에 경남 합천에 있는 ‘평화의집’ 이남재 원장은 원자폭탄 투하로 수많은 조선인이 살상되면서 한국도 원폭 피해로 고통을 받은 피해 당사국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가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에 대한 ‘광복 프레임’에 갇혀 되레 핵무기 자체의 비윤리성에 둔감해졌다고 지적했다. 합천은 한국 원폭피해자들의 70%가 출신지로 꼽아 ‘한국의 히로시마’라 불리는 곳이다.

이 원장은 “우리 사회는 원폭이 해방을 불렀다는 ‘광복 프레임’에 갇혀있다. 이는 핵무기 자체의 비윤리성에 둔감할뿐더러 원폭의 피해자성을 국제 사회에 호소하는 일본의 프레임에도 역으로 갇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이어 “원폭은 ‘광복의 상징’이 아니라 ‘핵 피해 없는 세상’, ‘핵무기 없는 세계’의 상징으로 쓰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이 인류의 비극인 원폭 피해와 함께 식민지배의 피해를 동시에 보면서 이중의 비극을 겪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2004년 주영수 한림대 의과대학 교수가 원폭피해자 2800여명을 대상으로 건강진단과 우편설문 조사를 진행한 결과, 원폭 피해 1세들의 암 발생률과 우울증 발생률은 일반인보다 각각 70배·93배가량 높고, 2세대의 절반가량이 10살 미만의 나이에 사망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주영수 교수는 “방탄소년단이 원폭 때문에 광복이 됐다는 의미로 티셔츠가 입었다면 그것은 부적합한 표현”이라며 “원폭으로 인한 대량살상은 그 자체로 인류의 비극이고, 특히 한국의 원폭피해자들은 식민지 피해와 피폭 피해라는 ‘이중의 비극’을 반세기 넘게 혼자 감당해온 당사자인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 핵 문제 만큼은 민족주의 넘어서야

이번 논란을 통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에 의한 해방과 독립이라는 ‘민족주의적 구도’를 넘어서 ‘핵무기의 비윤리성’이라는 보다 폭넓은 문제 제기로 인식을 확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오은정 한림대 일본학연구소 HK연구교수는 “(TV아사히의) 방송 취소는 잘못된 일이다. 극우가 혐한의 빌미로 삼고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하지만 동시에 한국이 원폭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피해자·가해자 구도에 갇혀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핵무기는 기본적으로 인류의 가장 비극적인 파괴였다. 일본인들의 죽음을 해방의 기쁨이 담긴 만세 사진 옆에 붙이는 것이 적절한지 모르겠다”며 “원폭이 다소간 일본의 항복을 앞당겼을지는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불필요한 살상이었다는 역사학계의 논의도 있다. 조금 더 성찰적이고 섬세한 세계사적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핵 문제 만큼은 ‘민족주의’를 넘어설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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