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꼭 48년 전 1970년 11월13일 전태일 열사는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 앞에서 몸에 불을 붙였다. 어머니 고 이소선(2011년 작고) 여사는 아들의 동료들과 함께 ‘청계피복노동조합’을 만들었다. 그러나 1980년 8월 전두환 신군부(국가보위비상대책위)는 ‘노조 정화지침’을 통해 노조와 그 간부들을 탄압했다.
2010년 1월 이 여사는 옛 노조원들과 함께 국가를 상대로 불법 노조 탄압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그해 6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노동기본권 침해는 중대한 인권침해”라며 국가의 사과와 명예회복을 권고하며 힘을 보탰다. 이듬해 이 여사는 세상을 떴지만, 1·2심은 “청계피복노조를 강제 해산시켜 노동기본권을 침해했다”며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015년 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과거사 역주행’을 결정했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 위원회’의 보상금 지급에 동의한 때에는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입은 피해 일체에 대해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이 발생한다”며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생활지원금 등을 받았다면 이미 정부와 ‘화해’가 성립한 것이기 때문에 불법체포 등 정신적 피해에 대한 추가 배상 요구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두 달 뒤 대법원은 이 여사 등의 재판도 같은 취지로 결론을 뒤집어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상황은 3년여 만에 바뀌었다. 지난 5월 공개된 양승태 대법원 시절 작성된 문건에서 대법원의 민주화보상법 전원합의체 판결이 “사법부의 대통령 국정운영 뒷받침 협력 사례”로 꼽힌 사실이 드러났다. 석 달 뒤인 지난 8월 헌법재판소는 대법원 판결을 되돌려 놓는 결정을 했다. “민주화보상법의 보상금에는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보장받고 있는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시킨 사람과 그 유족에 대한 국가의 보상의무를 회피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법 취지를 강조했다.
이 결정으로 청계피복노조원 등은 정신적 피해에 대한 배상을 청구할 길이 열렸는데, 이번엔 소송수행청인 국방부가 딴지를 걸고 나섰다. “헌재 결정은 대법원이 인정하지 않는 ‘한정위헌’ 결정”이라며 법원이 배상을 인정해선 안 된다는 의견을 밝힌 것이다. 행정부처가 대법원 판결을 ‘바로잡는’ 헌재 결정의 효력을 전면 부인한 것이다.
‘법조문을 ~라고 해석해 적용하면 위헌’이라는 식의 제한적인 위헌 결정을 ‘한정위헌’이라고 하는데, 법률 해석 권한을 갖는 대법원은 ‘헌재의 법률 해석’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행정부처가 두 최고 법원 사이의 다툼을 비집고 들어가 과거 국가가 저지른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피하려고 하는 셈이다. 이에 대해 권두섭 변호사는 12일 “헌재가 고심 끝에 이미 숨지거나 고령인 당사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결정을 내렸는데, 불법행위를 저질렀던 정부는 이를 존중하기는커녕 끝까지 소송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서울고검의 지휘를 받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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