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법률안 연구용역에 대한 검토 초안을 작성해주고 자문료 명목의 뒷돈을 챙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 법제처 국장 한아무개(56)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고 13일 밝혔다.
재판부는 한씨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연구용역에 대한 검토 초안을 작성하는 등 ‘자문 기타 용역을 제공하고 그 대가를 수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은 것 자체가 뇌물수수에 해당한다는 1·2심의 판단과 법리에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한씨는 지난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사전 입법지원 자문위원 등으로 선정된 로펌과 변호사, 대학교수, 산학협력단 등에 법률안 검토 용역 자료를 자문해주고 모두 9400여만원을 자문료 명목으로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로펌·변호사·교수를 위탁사업자나 법제관으로 선정해 정부 입법을 돕도록 하는 법제처의 사전 입법지원 제도는 한씨가 2010년 법제처 법제도선진화추진단 부단장으로 있을 때 직접 설계하고 도입한 것이다.
1심 재판부는 "한씨가 사전입법자문이나 용역 건에 대한 검토 초안을 작성해주고 그 대가로 용역대금 중 일부를 받은 사실은 인정된다. 하지만 한씨가 자문 업무를 실제로 성실하게 수행했고 금액이 많다고 볼 수 없는 등을 고려하면 한씨가 받은 돈을 뇌물로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다만, “한씨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자문 기타 용역을 제공하고 그 대가를 수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은 것은 뇌물을 받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 부분에 한해 뇌물수수죄가 성립한다“고 밝혔다.
2심 재판부도 “뇌물죄에서 뇌물의 내용이 되는 ‘이익’에는 재산적 이익뿐만 아니라 사람의 수요·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일체의 유·무형 이익을 포함한다. 따라서 ‘자문 기타 용역을 제공하고 그 대가를 수수할 수 있는 기회’ 자체도 피고인에게 이익이 되는 이상 뇌물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이런 법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여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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