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장애인 취업박람회에서 수어통역을 하는 장면. 백소아 기자.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통역 지원비용을 형사소송뿐만 아니라 민사소송에서도 법원이 지불해야 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의 권고가 나왔다.
인권위는 민사소송 과정에서 수어통역 지원비용을 신청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차별금지법) 위반이라고 판단하고 대법원장에게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사법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라고 15일 권고했다.
인권위의 설명을 보면, 청각장애인 ㄱ씨는 가사소송 중 ㄴ법원에 2017년 11월부터 올해 6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청각장애인 수어통역 지원을 신청했다. 하지만 ㄴ법원은 수어통역 지원 신청을 받아들이되 발생 비용 60만원을 ㄱ씨가 내게 했다. 가사 사건과 같은 ‘민사소송 진행비용은 당사자가 부담하는 게 원칙’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에 ㄱ씨는 “청각장애인이 재판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선 수어통역 지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를 자비로 부담하게 하는 것은 장애인 차별”이라며 인권위에 진정을 내게 된다.
ㄱ씨의 진정에 대해 대법원은 “민사소송의 경우 소요비용은 당사자 부담이 원칙”이라고 밝혔다. 소송비용의 국가부담을 원칙으로 하는 형사소송과 달리 민사·가사소송은 당사자가 부담해야 하며, 따라서 특별한 규정이 없으면 수어통역에 들어가는 비용도 당사자가 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인권위 장애인차별시정위원회는 재판 진행 과정에서 장애인에게 ‘실질적인 평등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법원이 수어통역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민사소송 중 수어통역 등 서비스 비용을 장애인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장애인에게 비장애인과 실질적으로 동등한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라는 장애차별금지법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6조 제4항은 ‘공공기관 및 그 소속원은 사법·행정절차 및 서비스를 장애인이 장애인이 아닌 사람과 실질적으로 동등한 수준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제공해야 하며, 이를 위해 정당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인권위 관계자는 “형사소송뿐만 아니라 민사소송에서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한 조건에서 사법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나온 판단”이라고 밝혔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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