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취재도 없이 경찰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베낀 보도는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언론사들이 부산지방경찰청이 낸 보도자료를 확인 취재 없이 그대로 보도하는 바람에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이아무개(34)씨가 10개 언론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이들 언론사가 150만원씩을 이씨에게 배상하도록 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고 15일 밝혔다.
이번 판결은 보도자료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일부의 잘못된 보도 관행에 경종을 울린 것으로 평가된다.
부산지방경찰청 홍보담당관실은 2012년 7월13일 ‘이씨가 건강보험급여 6700만원을 편취한 혐의로 구속된 아버지의 법원 공탁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1월 아버지가 공동 운영하던 ㅌ 병원의 수술실에 설치된 엑스-레이 촬영기기 등 1억2천만원 상당의 의료기기를 뜯어내 가져갔다. 이씨를 검거해 사전영장을 신청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기자들에게 배포했다. 10개 언론사는 보도자료 내용 그대로 기사를 작성해 보도했다. 이씨는 그해 12월 ‘혐의없음’의 불기소 처분을 받고, 언론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보도로 명예는 훼손됐지만, 피고 언론사들이 그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어 위법성이 사라진다’며 이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1심 재판부는 “경찰 보도자료는 경찰이 절차를 거쳐 작성·배포한 것이기 때문에 피고들로서는 그 내용을 신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반면에 2심 재판부는 “언론사들이 피의사실의 진실성을 뒷받침할 적절하고도 충분한 취재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각 언론사가 150만원씩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심 재판부는 “경찰은 공식적인 보도자료 양식으로 재작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언론사의 추가 취재를 전제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피고 언론사들은 이씨나 담당 경찰관에 대한 취재 등 피의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추가적인 취재를 하지 않았다. 피의사실을 급박하게 보도해야 할 특별한 사정도 없었다”는 점 등을 들어 명예훼손 보도의 위법성을 인정했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대법원은 “언론기관으로서는 보도에 앞서 혐의사실을 뒷받침할 적절하고도 충분한 취재를 해야 하고, 보도할 때도 기사 내용이나 표현방법 등을 주의해야 한다. 그러지 못했다면 보도내용이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이상 명예훼손으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시했다.
여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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