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경찰이 6·13 지방선거 당시 기초단체장 예비후보의 동향보고서를 작성해 지방경찰청에 보고한 사실이 14일 확인됐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정보경찰의 민간인·정치인 사찰 의혹은 여러 차례 드러난 적이 있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이런 의혹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처음이다.
<한겨레> 취재 결과, 경기 양평경찰서 정보·보안과의 이아무개 정보관은 지방선거를 앞둔 지난 3월 전아무개 당시 양평군수 예비후보와 관련한 보고서를 작성해 경기남부경찰청에 보고했다. 전 후보는 예비후보 등록 한 달 전인 2월 여주경찰서장에서 퇴임해 3월6일 양평군수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이 정보관이 ‘전○○ 전 경찰서장 행보’(행보 보고서)라는 제목으로 경기남부경찰청에 보고서를 올린 날은 바로 전 후보가 예비후보로 등록한 3월6일이었다.
전 후보가 양평군수로 출마할 것이라는 사실은 퇴임 때부터 예상됐던 일이었다. 그는 2월 서장 퇴임식에서 “오랜 공직 경험을 고향 양평 발전에 헌신할 수 있는 마지막 봉사의 기회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이 정보관이 관내 출마 예상자인 전 후보의 행보와 동향을 살펴오다, 예비후보로 등록한 날 바로 동향보고서를 작성해 경찰 상부에 보고한 것으로 의심된다.
문서의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부적절한 내용이 담긴 것으로 보이는 정황은 여럿 있다. 우선 이 정보관은 이 보고서를 통상 정보경찰의 보고 시스템인 ‘NPIS’(국가경찰정보시스템)에 올리지 않고 경기남부경찰청 정보과 담당자 개인 전자우편으로 전달했다. 이른바 ‘별보’(별도보고)를 한 것이다. 한 정보경찰은 “민감한 내용이나 외부에 알려지면 안 되는 내용은 시스템에 올리는 것이 아니라 전자우편이나 다른 방식으로 보고서를 전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양평경찰서 내부에서 이 정보관의 ‘행보 보고서’ 작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는데, 경찰서 간부가 이를 입막음하려 한 정황도 드러났다. 경기남부경찰청 감찰부서는 최근 부하 직원에게 자신이 사들일 땅을 알아보라고 하는 등 사적 지시를 내린 양평경찰서장의 ‘갑질’을 조사하고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양평경찰서의 한 직원이 이 정보관의 정치인 사찰 보고서 작성 사실을 서장에게 알리려 하자 이 경찰서의 간부 ㄱ씨가 이를 만류했다는 증언을 확보한 것이다. ㄱ씨는 서장에게 알리려 한 직원에게 “이 정보관에게 더는 지방선거 후보자 관련 보고서를 쓰지 말라고 했다”, “서장에게는 정치적인 보고서 작성 사실이 없었다고 말하라” 등의 말을 하며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양평경찰서 간부 ㄱ씨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정보경찰이 정치 관련한 정보를 수집하는 경우는 없다. 해당 보고서에 관련해서는 기억이 안 난다”고 해명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일이 양평경찰서 차원의 부적절한 정보 수집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보고서를 받은 경기남부경찰청 정보과는 이 행보 보고서를 ‘중보’(중요정보)로 분류해 5점의 첩보점수까지 준 것으로 나타났다. 첩보 점수는 이후 경찰의 인사고과 등에 반영된다. 상급 기관이 지방선거 예비후보와 관련한 정보경찰의 보고서 작성을 중단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장려한 셈이다. 이에 대해 경기남부경찰청 관계자는 “해당 보고서가 있었던 것은 맞다. 다만 보존 기간이 지나 현재 보고서 자체는 삭제된 상태라 내용을 확인할 수는 없다”며 “(전 후보가) 경찰 출신이기 때문에 해당 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사찰 등) 큰 문제가 있는 보고서는 아닐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지난 5월 경찰개혁위원회가 정보경찰 개혁안을 발표한 이후 일체의 동향보고를 안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더구나 ‘행보 보고서’가 작성된 3월6일은 경찰청이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정치에 관여할 목적을 가진 정보활동을 법률로 금지해 처벌하는 등의 정보경찰 개혁방안을 발표한 날이었다. 이처럼 과거 정부 정보경찰의 폐해가 심각해 개혁이 논의되고 있던 순간에도 일선에서는 여전히 부적절한 행위가 계속됐던 것이다.
문제는 양평경찰서에서 양평군수 동향보고서를 작성한 것처럼 수많은 정보경찰들이 관내 지방선거 후보자의 동향 등을 파악해 보고하고 지방경찰청 등이 이를 수집해왔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경찰이 정보를 정치적으로 활용해온 악습이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나온다. 지난해 경찰 개혁을 위해 만들어진 ‘경찰개혁위원회’에서 정보경찰 개혁 논의에 참여했던 양홍석 변호사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무척 부적절한 일이다. 이 사건뿐 아니라 정보경찰이 지방선거에서 더 많은 후보자 정보 수집 활동 등을 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제대로 된 진상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환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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