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참석한 판사들이 이날 저녁 김명수 대법원장과 구내식당에서 만찬을 한 뒤 나오고 있다. 고양/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전국법관대표회의(의장 최기상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 농단 행위에 대해 ‘탄핵 소추 절차까지 검토돼야 할 중대한 헌법 위반’이라는 데 뜻을 모았다. 국민의 ‘사법 불신’이 날로 커가는 중대한 위기 상황을 맞아, 일선 판사들이 나서 동료 법관들을 ‘심판대’에 올리는 초유의 선택을 한 것이다. 법관을 대표하는 조직이 스스로 ‘법관 탄핵 필요성’을 의결한 만큼, 실제 탄핵 소추 권한을 쥔 국회의 행보가 주목된다. ▶관련기사 3·4면
법관회의는 19일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제2회 정기회의를 열어 ‘재판 독립 침해 등 행위에 대한 우리의 의견’을 의결했다. 법관회의는 “우리는 법원행정처 관계자가 특정 재판에 관하여 정부 관계자와 재판 진행 방향을 논의하고 의견서 작성 등 자문을 하여준 행위나 일선 재판부에 연락하여 특정한 내용과 방향의 판결을 요구하고 재판 절차 진행에 관하여 의견을 제시한 행위가 징계 절차 외에 탄핵 소추 절차까지 함께 검토되어야 할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라는 데 대하여 인식을 같이한다”고 밝혔다. 법관회의는 3시간여 진행된 토론 끝에 참석 법관 105명 중 과반수인 53명의 찬성, 43명의 반대, 9명의 기권으로 이런 내용을 의결했다.
그동안 ‘사법 농단’ 관련 법관을 탄핵하자는 주장은 법원 밖에서만 나왔다. 이번 의결안은 대구지법 안동지원 소속 판사 6명이 지난주 “명백한 재판독립 침해 행위에 대하여 위헌적인 행위였음을 우리 스스로 국민에게 고백해야 한다”고 호소한 게 계기가 됐다.
법관회의가 자칫 내부 갈등을 키울 수도 있는 ‘동료 법관 탄핵’까지 의결한 데에는 이번 사법 농단 사태의 엄중함에 대한 자각과 국민의 신뢰를 영원히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한 법관 대표는 “부결되면 판사들의 자정 의지와 노력이 완벽하게 부정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한 판사는 “부담스러운 안건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확실히 과거와 단절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해 통과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특히 그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개별 판사에 대한) 인사 불이익이 확인됐다. 이번 사태의 시작인 ‘판사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뒷조사는 했지만 인사 불이익이 없었다’고 사안을 왜곡했던 책임자들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도 컸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법관회의마저 (의결안을) 부결시켰다면 사법부 전체가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의결은 향후 법관 탄핵이 ‘사법 권력’ 감시와 견제를 위한 실질적인 제도로 자리매김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법조계와 학계에선 헌정 사상 법관 탄핵 소추가 단 한차례도 없었다는 점 자체가 비정상적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두번씩이나 탄핵 소추 한 바 있는 국회가 법관 탄핵 소추를 한번도 못 한 것 자체가 ‘사법부 성역화’를 방증한다는 것이다. 송기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민의) 사법부 불신은 여전히 크지만, 법원에 건강한 판사들이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스러운 부분”이라며 “이제 국회가 하루빨리 공정한 재판에 대한 신뢰를 저버린 판사들을 탄핵 소추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양/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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