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상식 작가가 지난 19일 제주 비자림로에서 잘린 삼나무를 위한 위로의 의미를 담은 ‘근음’ 설치 퍼포먼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허호준 기자
“이곳에 와서 잘려나간 삼나무림 사이를 걷다 보면 새로운 관점에서 숲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요. 숲을 지키자는 쪽과 개발하자는 쪽, 두 개의 관점에 대한 대립을 넘어 숲에 대한 위로가 필요합니다.”
작가 성상식(36)씨는 19일 도로 확장 공사를 위해 삼나무숲을 훼손해 논란이 벌어진 제주시 대천동 비자림로 현장에서 설치 퍼포먼스 ‘근음’(根音)을 벌이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실험음악과 즉흥음악을 작곡·연주하는 음악가인 성 작가는 지난 8월 비자림로 개발 논란이 뜨거울 때 제주도에 내려와 비자림로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잘려나간 915그루의 삼나무 밑동이 있는 비자림로 현장 한복판에 그는 지난달 26일 삼나무 뿌리를 거꾸로 세워놓았다. 삼나무 뿌리는 높이 2m, 지름 60㎝ 크기로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서 가져왔다. 성 작가는 “삼나무를 찾기 위해 제주도 곳곳을 돌아다녔다. 우연히 가시리의 도로변에 있는 잘린 삼나무 뿌리를 주인한테 허락을 받아 옮겨와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삼나무 밑동 위에 거꾸로 세워진 뿌리는 잘려나간 삼나무가 다시 살아나 서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밑동에는 구멍이 숭숭 뚫린 돌멩이들을 하나씩 놓았다. 그는 현무암 돌이 나무 밑동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했다.
자연의 소리와 일상의 소리를 녹음하고, 이를 재배치하는 작업을 주로 한다는 성 작가는 “처음 비자림로 현장에 왔을 때도 소리로 작업하려고 했다. 그런데 오자마자 소리를 들은 게 아니라고 나무가 잘려 있는 걸 봤다. 더 이상 녹음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해 밑동만 남은 삼나무 뿌리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그는 “뿌리는 보이지 않지만 자란다. 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울린다. 들리지만 들리지 않았던 숲의 울음소리는,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나무의 뿌리와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며, 퍼포먼스의 제목 ‘근음’을 설명했다. “이번 퍼포먼스는 숲을 위로하는 것이지만, 저 스스로 위로를 받은 것 같다”는 성 작가는 “논란의 어느 한쪽을 지지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논란의 와중에 잘려나간 삼나무숲의 소리에 같이 귀 기울이고 숲을 위로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고 말했다.
그는 ‘근음’ 제목의 노래도 작곡해 발표했다. “뿌리는 나무가 되고/ 별은 내려 앉았네/ 뿌리는 하늘에 닿고/ 별은 내려 앉았네/ 다시 노래가 울리네/ 다시 노래가 울리네/ 다시 노래가 울리네/ 다시 노래가 울리네.”
글·사진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