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 모습.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서아무개(51)씨는 2015년 2월6일 수원지방법원에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배임)으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서씨의 혐의는 반드시 변호인이 있어야 하는 필요적 변호사건이어서,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은 서씨에게 국선변호인을 선정해줬다. 국선변호인은 그해 3월12일, 피고인인 서씨는 3월12일 소송기록접수통지서를 송달받았다. 형사소송법은 소송기록접수통지서를 받은 날부터 20일 이내에 항소이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본안에 대한 심리 없이 바로 항소기각을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서씨와 국선변호인이 모두 항소이유서를 내지 않고 있던 3월23일, 서씨는 사선변호인을 따로 선임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형사소송규칙에 따라 다음날 서씨의 국선변호인 선정을 취소했다. 서씨의 사선변호인은 5월21일에야 항소이유서를 냈고, 서울고법은 종전 국선변호인을 기준으로 한 항소이유서 제출기간 안에 항소이유서가 제출되지 않았다며 항소기각을 결정했다.
서씨 쪽은 새로 선임된 사선변호인에게도 다시 소송기록접수통지를 해야 하고, 20일간의 항소이유서 제출기간도 사선변호인이 통지를 받은 때부터 다시 계산해야 한다며 대법원에 재항고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 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22일 서씨의 재항고를 기각하는 결정을 고지했다. 대법원은 ”국선변호인에게 소송기록접수통지를 한 뒤엔 새로 선임된 사선변호인에게 다시 소송기록접수통지를 해줄 필요가 없으며, 이 경우 항소이유서 제출기간은 (선정이 취소된 기존의) 국선변호인 또는 피고인이 소송기록접수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계산해야 한다”는 기존의 2007년 3월 대법원 판례를 바꿀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다수의견에 참여한 대법관 7명은 “형사소송법과 형사소송규칙은 국선과 사선변호인의 소송기록접수통지 규정을 구분하고 있다. 국선변호인의 경우, 소송기록접수통지 뒤 새로 선정되더라도 다시 통지하는 경우를 따로 정해두고 있다. 그러나 사선변호인의 경우, 피고인이나 기존의 국선변호인에게 소송기록접수통지를 한 뒤 새로 선임된 사선변호인에게 새로 소송기록접수통지를 해야 한다는 규정이나 근거는 없다”고 판단 이유를 밝혔다.
반면에, 조희대·조재연·박정화·김선수·이동원 대법관은 새로 선임된 사선변호인에게도 소송기록접수통지를 해 항소이유서 제출기간을 다시 계산하도록 해야 한다며 반대의견을 냈다. 반대의견은 “이 문제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피고인의 권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고 있는지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새로 선임된 사선변호인에게 다시 소송기록접수통지를 할 필요가 없다면, 그 사선변호인은 종전의 항소이유서 제출기간 가운데 남은 시간에 항소이유서를 작성해 제출해야 한다. 이는 항소이유서 제출기간을 사실상 단축하는 것으로, ‘변호인의 충분한 조력을 받을 피고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가 된다.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국선이냐 사선이냐에 따라 달리 취급될 수도 없다. 따라서 ‘피고인이 책임질 수 없는 사유로 국선변호인이 교체됐을 경우 바뀐 국선변호인에게 다시 소송기록접수통지를 해야 한다’는 형사소송규칙의 규정을 이번 사건처럼 새로 선임된 사선변호인에게도 유추 적용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다수의견은 “법원이 선정해 주는 국선변호인과 피고인이 계약에 따라 선임하는 사선변호인은 그 성격이 달라, 국선변호인 관련 규정을 사선변호인에게 유추 적용하는 것은 신중히 해야 한다. 피고인이 이미 선정된 국선변호인의 조력을 포기하고 자신의 책임 아래 사선변호인을 선임한 것을 ‘피고인이 책임질 수 없는 사유’로 변호인이 변경된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고 반박했다. 다수의견은 “이런 유추 적용을 허용하면 명시적 규정 없는 다른 여러 경우까지 새로 소송기록접수통지를 해야 하게 돼, 신속하고 원활한 재판을 하려는 항소이유서 제출 제도의 취지에 어긋나게 된다. 나아가 형사소송 절차를 의도적으로 지연시키기 위해 소송기록접수통지 제도를 악용할 우려도 있다”고 주장했다.
여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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